지난 23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 광장에서 한 청원경찰이 광장에 상주하고 있는 노숙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지난 23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 광장에서 한 청원경찰이 광장에 상주하고 있는 노숙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 인천문화예술회관 공원에서 노숙 중인 A씨의 오전은 그늘막 아래 벤치에 누워 선잠을 자는 게 전부다. 쌀쌀한 바람에 휘날리는 엉킨 머리카락과 긴 수염은 정리를 안 한 지 몇 년이 됐는지도 모른다. 세면은 공원 한쪽의 식음수 시설에서 하는 양치질 정도가 전부다.

점심 식사는 관계 기관에서 나눠 주는 도시락으로 때우거나 그마저도 없으면 인천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버려진 음식물을 찾아 나선다. 그나마 저녁 식사는 관교동 먹거리골목 식당 주인들이 주는 1천 원짜리 등을 모아 편의점에서 해결한다. 사정이 이러니 코로나19 방지 마스크는 관심도 없다. 해가 지면 추위를 피해 공원 내 공중화장실 대변기 칸에 들어가 앉은 채로 잠이 든다. 주변 사람들은 A씨가 이렇게 예술회관 근처에서 생활한 지 최소 4년이라고 말한다.

인천지역 곳곳에 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공원과 지하철 역사 등을 배회하는 길거리 노숙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인천문화예술회관 주변 공원에서 다수의 노숙인들이 ‘터’를 잡고 있다.

4년 넘게 노숙하는 A씨와 함께 불편한 다리를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지내는 여성 노숙인 B씨 등은 공용화장실 앞 벤치에 살림살이를 쌓아 두고 생활한다. 살림살이라고 해야 우산 몇 개와 먹다 남은 음식 등이고, 그마저도 들고 이동하기 편하게 큰 마대에 담겨 있다. 몇 주 전부터 타지에서 이동해 같이 생활하는 C씨는 걸친 옷이 가진 것의 전부다.

노숙자들과 오랜 기간 관계를 이어온 예술회관 청원경찰 강모 씨는 "이들에게 수시로 쉼터 시설 이용을 권유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불편한 노숙생활을 이어간다"며 "시민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에 불편을 주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짐 정리 등을 부탁한다"고 설명했다.

인천시청역 오디세이 광장에는 노숙인들과 함께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몇 년째 거주하다시피 하는 노숙인도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하루종일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을 보내는 노숙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하철역사는 실내라는 점과 전기 사용이 가능하고, 큰 규모의 공중화장실이 있어 노숙인들이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공공 무선인터넷 이용도 가능하다 보니 하루 종일 휴대전화로 영상 등을 시청하며 시간을 보내기 좋은 환경이다.

오디세이 광장은 시민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인천교통공사도 노숙을 제재할 근거가 없다.

무엇보다 요즘에는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쪽방촌 일부 철거가 예정되면서 갈 곳을 잃은 노숙인들이 가까운 인천으로 이동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3주 전 영등포에서 인천으로 내려와 인천시청역 주변에 노숙하는 D씨는 시설 관리 공무원이나 청원경찰이 샤워시설, 먹거리, 피복 지급 등 노숙자 쉼터의 장점을 들며 시설 이용을 권했지만 어떤 이유인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는 인천내일을여는집 관계자는 "길거리 노숙인들은 단체생활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에는 타 지역 노숙인들이 인천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시로 길거리 노숙인에 대한 실태조사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승준 기자 sjpar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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