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익 전 인천시 의회사무처장
이상익 전 인천시 의회사무처장

공직자에게 퇴직은 유종의 미(有終之美)를 뜻한다. 공직 퇴직자라면 누구라도 응당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함을 느낄 만한 명예로운 호칭이리라. 공직 초기만 해도 퇴직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고 아득히 먼 남의 이야기로 들렸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또한 선배 공무원들의 퇴임식은 때가 되면 치르는 통과의례 정도로 무심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유수와 같은 세월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공직 생활 속에서 업무의 성취감과 만족감 그리고 때로는 좌절감을 느끼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종착역인 퇴직에 이르게 된다. 

이후 공직 퇴직자 또는 연금 생활자라는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간다. 문제는 대부분의 공직자가 60세 이전에 물러나지만 인간의 수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작금 생명과학 및 의학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100세 인생’이 꿈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 하버드 의대 데이비드 A. 싱클레어 교수는 「노화의 종말(Lifespan)」에서 조만간 인간의 수명이 120∼130세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공직 퇴직자들 대부분이 여생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의미심장한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하리라. 인생 제2막 또는 이모작의 의미는? 퇴직 후 인생에 있어 또 다른 아름다운 마무리는 어떤 의미인가? 또한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인생 설계를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공직 퇴임 직후 얼마 동안은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퇴직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업무 압박으로부터의 해방감, 홀가분함, 자유로움, 편안함 그리고 행복감에 젖어 지낸다.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고 그동안 못해 본 여행도 다닌다. 각자 취향에 맞는 동호회, 취미 활동이나 여가 활동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감정과 느낌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못한다. 우선 조직 소속감의 상실과 인적 교류 감소 등도 확연히 느껴진다. 마음 한구석에는 왠지 현실 사회로부터 멀어진다는 이탈감, 소외감, 지루함, 무력감 심지어 초조함과 불안감까지 잦아들기 시작한다. 

특히 실질적인 소득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현실 경제와의 괴리에서 오는 심적 충격이 예상보다 훨씬 큰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욱이 앞으로 20∼30년간 이러한 불안한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리적, 정신적 강박감마저 밀려들어 온다. 특별한 일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가 더 지루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 노자의 도덕경에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라는 말씀이 나온다. 과거에 일구어 놓은 업적과 성공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고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지금까지의 인생 궤적, 명예, 직책을 과감히 잊어버리고 새로운 목표 설정과 시작하라는 함의가 담겨져 있다. 

통상 퇴직자를 포함해 노년을 행복하게 지내기 위한 조건으로 건강, 배우자, 돈, 일거리, 친구를 꼽는 데는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 중에서도 적당한 일자리는 건강과 경제적 도움, 사회공헌 활동 그리고 인간관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기대수명 연장과 노령층 증가, 노인 연령 상향 조정 계획에 따라 퇴직자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현 정부의 노인 일자리 창출 노력은 한편으론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현장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시 50 플러스(+) 재단’을 설립해 50대 퇴직자부터 67세에 이르는 중장년, 노년층을 대상으로 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교육, 취업알선 및 창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공공일자리, 어르신 일자리, 피트타임·아르바이트 등 퇴직자의 경력과 능력에 맞는 취업 기회를 꾸준히 개발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공직 퇴직자를 비롯한 노년층도 여전히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해 소중한 국가 자산이라는 혜안을 높이 평가하며 좋은 성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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