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만이다. 부평미군기지가 일제강점기인 지난 1939년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일제가 조선 최대 군수공장을 부평에 조성한 지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만에 비로소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인천시민이 부둥켜안고 환영할 일이다. 인천시는 부평미군기지인 캠프마켓 1단계 반환 부지 중 환경 정화에 지장이 없는 야구장 부지 등에 경계 펜스를 설치하고 오는 15일 인천시민의날에 맞춰 시민에 개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 6일 1939년 일제강점기부터 81년 동안 시민들의 출입을 막았던 캠프마켓의 2m 높이 콘크리트 담장 30m가량을 철거했다. 

오랫동안 시민의 발길을 거부했던 금단(禁斷)의 땅은 불과 반나절 만에 이렇게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허물어진 담장은 단순히 캠프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의 의미만이 아니라 81년간 인천시민에 닫혀 있던 땅을 열어 미래로 향하는 새로운 해방의 문을 여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이 가진 역사적 상징성 때문이다. 조선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리 잡은 미군기지가 떠날 때까지 8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쓰디쓴 질곡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캠프마켓은 일제강점기인 지난 1939년 조선 최대 군수공장인 ‘일본육군조병창’으로 쓰였던 곳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침략 야욕이 반영된 잠수정을 비롯해 각종 무기류와 군수품을 생산한 곳이기도 하지만 1만 명 안팎으로 추산되는 조선인들이 강제 노역에 동원돼 배고픔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며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해방이 됐지만 시민에게 온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이번에는 남한에 주둔한 미군의 주요 보급기지가 됐다. 

1970년대 이후에는 주한미군 병력 감축과 군비 축소에 따라 대부분 기능이 중단되거나 다른 기지로 이전했고 얼마 전까지는 주한미군에 공급하는 빵 공장이 남아 있었다. 시는 81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온 이곳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상이 그려진 것은 아니지만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역사와 가치를 담아내는 소중한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 안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경으로 여겨졌던 시절을 생각한다면 힘없는 나라를 자조하는 공간이 아니라 개방과 소통으로 역사를 인식하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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