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전오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권전오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봄이 되면 저어새가 인천으로 돌아온다. 전 세계에 3천에서 4천 마리가량 남아 있는 국제적인 보호종이다.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좌우로 저으며 부리 사이에 걸려드는 물고기나 저서생물들을 잡아먹는 순하게 생긴 새이다. 저어새와 함께 사냥하는 백로를 본 적이 있다.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백로는 긴 다리를 물속에 담그고 돌부처처럼 미동도 하지 않다가 사정권내에 들어온 물고기를 날카로운 부리로 찍듯이 잡아내는 사냥의 명수다. 봄이 되면 농부들은 논을 간다. 논을 가는 농부의 뒤를 따라가며 뒤집힌 땅속에서 몸을 내미는 벌레들을 냉큼 잡아먹는 것도 백로이다. 백로를 보면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논밭은 물론 강변이나 갯벌에서도 백로를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저어새는 백로와 너무나 비교된다. 먹이를 찾을 때는 물가 쪽에서 헤매고 다닌다. 부리를 연신 좌우로 흔든다. 눈을 꼭 감고 부리를 흔드는 것 같다. 에라 모르겠다, 부리에 부딪히거나 부리 사이에 끼이면 잡아먹을 요량으로 그냥 흔들어댄다. 물론 부리는 예민할 것이다. 작은 접촉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신경이 발달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흙탕물이 된 물속에서 용하게도 먹이를 건져 올린다.

보호종이란 인간의 활동과 자연훼손이 확대되면서 개체수가 급감해 멸종위기에 가까워지는 종이다. 보호종인 호랑이나 맹금류 새와 같은 경우는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기 때문에 먹이사슬에 혼란이 발생하면 이들 상위층 종들도 생존하기 어려워져 보호종이 된다.  그리고 저어새와 같은 경우는 특별한 생태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변형된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보호종을 지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자연보호는 누구나 인정하는 당위에 해당한다. 길 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보면 자연을 보호하지 말자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자연은 끊임없이 훼손되고 있는가? 개발사업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경제개발 논리가 자연보호 논리를 앞서기 때문이다. 지난 6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경제개발이나 일자리 창출 등의 논리 앞에 자연 훼손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경제개발을 기본 전제로 하고 최소한 이 정도, 이런 종이 사는 서식지는 지키자는 차원에서 보호종을 지정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시대는 흘러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됐다. 어떤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과거와 다른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 시점에서 보호종의 의미를 다시 점검해보고 싶다. 보호종을 보호하면 자연을 잘 관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아닌 것 같다. 보호종은 깃대종의 개념처럼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 어떤 보호종이 잘 살 수 있다면 주변에 함께 살고 있는 종이 함께 보호되는 것이고 먹이사슬의 상위 종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위의 다양한 종들이 함께 잘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보호종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보통종까지 보호의 의미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는 보호종이고 보통종이고 구분할 필요가 없는지 모른다. 근본적으로 따져 볼 때도 어떤 종은 가치가 있고 어떤 종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 논리적이지도 않다. 더구나 가치가 있고 없고를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 도시 공원에서 만나는 잠자리와 나비, 하천에서 먹이를 구하는 백로를 보면서 잊혀지고 있는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우리 도시인에게는 보기 힘든 보호종 저어새보다 보통종인 백로라도 만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보호종을 중심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시기는 지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는 자연의 모든 요소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자연 요소들을 복원하는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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