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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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최고 인기 콘텐츠는 단연 ‘가짜사나이’다. "나태한 자신을 바꾸고 싶은 가짜사나이들이 혹독한 군사훈련을 거쳐 진짜 사나이가 된다"는 구성하에 전직 UDT 출신 교관들이 (유튜버나 BJ 등 방송인이라고는 하지만, 신체적 능력만으로는) 평균 또는 그 이하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군사훈련을 제공한다. 

1억뷰 가까운 조회수가 증명하듯, 가짜사나이를 시청한 사람들은 인간 개조 현장을 보며 열광했고, 교관들은 공중파로 진출해 각종 예능과 CF를 섭렵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마치 스타 셰프들이 방송가를 장악하며 연예인과 전문직업인 간의 경계를 허물었듯, 이제 전쟁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특수부대 출신’ 남성들의 시대가 오는 듯했다.

하지만, 훈련대장을 맡으며 일약 대세인물로 떠올랐던 한 교관의 성범죄 전력이 밝혀지고, 때마침 방영된 시즌2에서 가혹행위 논란으로 인해 그간의 인기는 거품처럼 사라졌고, 급기야 ‘가짜 사나이’ 제작자는 지난 16일 훈련생과 교관들, 가족들까지 극심한 악플에 시달린다며 전격 방영 중단을 선언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가짜사나이 열풍, 필자는 가짜사나이 속 교관들의 일부 부적절한 과거 행적이 아닌 ‘가짜사나이’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가짜사나이’의 화면에는 욕설이 넘친다. 그리고 온통 진흙빛으로 화면을 뒤엎은 비속어와 더불어 또 하나 넘치는 게 있다. 그것은 ‘얼차려’로 대변되는 가혹행위다. 교관들은 "이 새끼"를 제외하고는 모두 묵음처리가 될 정도로 노골적인 욕설을 내뱉고, 기승전 "대가리 박아"로 이어지는 얼차려는 참가자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린다. 단 5일간의 촬영기간 동안, 제작진은 충분한 방송 분량을 뽑아내려는 듯, 제대로 된 워밍업이나 단계별 적응 과정도 없이 첫날부터 참가자들을 진흙탕에 내던진 채 허둥지둥 휘둘리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손이 다 까지고, 다리가 다쳐 쓰려지며, 숨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조여와도, 이어지는 건 "나약한 정신상태 때문"이라는 질책성 발언뿐이었다. 특히 얼차려를 제대로 못 받는 참가자를 향해 "너 인성 문제 있어?"라고 말하는 모습은 ‘얼차려 잘 받는 사람은 인성이 훌륭하다’는 부실한 논리하에 이뤄진 인격모독일 뿐이다. 

결국 극한 상황 속에서 한없이 무력한 참가자와 이런 모든 상황을 능숙하게 통제하는 교관들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참가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진짜 사나이’의 영역, 바로 그곳에 교관들이 있다는 점만 확인해줄 뿐이다.

가짜사나이 속 훈련은 인간개조를 이유로 가해지는 가혹행위의 연속일 뿐 엄밀한 의미의 훈련이라 볼 수 없다. 대가리 박기를 반복한다 해도 육체적 고통과 상대에 대한 악감정만 더해질 뿐, 이를 통해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진 못한다. 특히 얼차려 무한반복은 참가자의 의식을 단순화시켜, 권력자인 교관에게 절대복종하게 만드는 ‘길들이기’ 과정일 뿐이다. 이는 군사독재시절 사회악을 해소한다는 구실로 정권 반대파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대식 훈련기관 삼청교육대의 잔상과 겹친다.

필자는 학창시절 선생님의 매질과 26개월의 군복무 시절 선임들의 고춧가루를 응당 거쳐야 할 삶의 일부라 여기며 이에 순응했던 기성세대이다. 하지만 그런 기성세대들의 노력과 청년세대들의 높은 인권의식이 결합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학교도, 군대도, 직장도, 대한민국 어느 곳에도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방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인권’의 소중함이 곧 상식이 된 것이다. 

하지만 가짜사나이는 우리 사회가 힘들게 성취해온 인권의 가치를 외면한 채, 다시금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심히 걱정스럽다.

가짜사나이 속 참가자들의 고통은 매섭다. 하지만 그 고통이 격해지면 격해질수록 조회수는 오르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고통에 열광하는 동안 대한민국 인권 시계는 뒤로 감기고 있었다.

‘가짜사나이’가 보여준 세계는 허상이다. 우리를 태운 이 세상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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