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 시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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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를 읽고
이태희 시인/인천대 기초교육원 초빙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10.21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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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시인
이태희 시인

얼마 전에 한 독서 모임에서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를 읽었다. 놀라운 책이었다. 저자인 카렌 암스트롱은 열일곱 살에 ‘신을 만나고 싶다’며 수녀원에 들어갔으나, ‘신으로부터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며 7년 만에 환속한 영국의 종교학자이다. 그녀의 이력도 놀라웠지만 독서 토론 내내 경탄을 금치 못한 것은 책 안에 담긴 축의 시대 현자들의 가르침이었다. 

‘축의 시대’는 독일의 철학자 카르 야스퍼스가 말한, 인류의 정신적 발전의 중심 축을 이룬 시기로 대략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를 말한다. 700여 년이라는 기간은 한 개인의 삶에 비추면 매우 긴 시간이지만, 수백만 년에 이르는 인류의 전 역사에 비하면 찰나적 시간이다. 이 찰나적 시기에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전통이 세계의 네 지역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이러한 축의 시대는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레미야, ‘우파니샤드’의 신비주의자들, 맹자, 에우리피데스의 시대였다. 이들이 세계의 네 지역에서 보여준 통찰을 현재의 우리가 넘어선 적이 없다는 것이 카렌 암스트롱의 주장이다. 즉, 축의 시대 현자들의 가르침과 통찰을 드러내려는 것이 바로 「축의 시대」의 저술 의도다. 한 서평에 따르면, 「축의 시대」의 원제는 ‘위대한 변화 : 우리의 종교적 전통의 시작’이라고 한다. 원제가 저술 의도에 적합해 보인다. 

축의 시대 현자들의 가르침과 통찰을 짧은 지면에서 소개한다는 것이 무모한 일이지만, 무지한 탓에 용감하다고, 여기에 감히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공통된 황금률의 발견이다. 황금률이란 대개 ‘예수가 산상 수훈 중에 보인 기독교의 기본적 윤리관’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 즉,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일컫는다. 이러한 황금률의 발견이 예수 이전에 축의 시대 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축의 시대’의 증언이다. 공자는 그것을 ‘인’이라고 불렀으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선’이라고 불렀다.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 역시 ‘자이나교도는 스스로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다른 모두를 대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붓다 또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들도 해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동어반복과도 같이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온 이 축의 시대 현자들의 가르침, 황금률의 발견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축의 시대가 지났어도 ‘황금률’에 대한 가르침은 이어졌다. 서기 132년 로마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랍비 아키바 벤 요셉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이 ‘토라의 가장 위대한 원리’라고 가르쳤다. 나아가 ‘신이 태초에 오직 한 사람을 창조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도 온 세상을 없애는 것과 같으며,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일갈했다. 카렌 암스트롱은 자서전 「마음의 진보」에서 "수녀원을 뛰쳐나왔지만 여전히 혼자 살며, 하루 대부분을 침묵 속에서 살면서 신과 여성에 대해 글을 쓰고 생각하고 말하는 데 전념한다"라고 적고 있다. 나는 그녀가 통찰한 축의 시대 현자들의 황금률이야말로 그녀가 애타게 기다리는 ‘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나 감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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