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객원논설위원
김락기 객원논설위원

아름다운 것을 접하면 그저 좋아진다. 대상에 따라 온통 가슴이 쿵쾅거리기도 한다. 절로 기뻐진다. 이 가을 오만 산천에 꽃피운 저 쑥부쟁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휘황스레 펼쳐지는 연보랏빛 천지나 하얀 꽃밭은 다만 꿈결이다. 갈 나물로 먹는 야생 보리뱅이가 야들야들 풋풋하니 더 장관이다. 이처럼 산천초목은 비대면 거리두기 사회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채 어김없이 제 갈 길을 간다. 아름다움 속에는 희비가 섞여 있다. 어떤 아름다운 경우는 슬프거나 아플 수도 있다. 진정 아름다움이 겨울 때는 눈물이 난다. 감격무지, 기쁨의 눈물이다. 때로는 이 기쁨의 속내평 곳곳마다 말 못할 사연이 싸여 있다. 배고픔·헤어짐·죽음·우환·야유·비난 같은 고초 다발들, 이런 시련 속에 맺힌 눈물들은 본디 슬픔이요 아픔이었을 수밖에. 아름다움의 양면성이다. 

지난달 24일 ‘하늘의 로또 운석’이라는 별똥별 기사가 어느 저널리즘에 실렸고, 그 며칠간 목격담이 SNS를 달궜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에서의 순진무구한 별똥별과는 거리가 멀지만, 흔히 별똥별은 아름다운 낭만으로 회자된다. 어릴 적 시골집 멍석에 누워 빠져들던 밤하늘 거대 스크린에 쏟아지던 별똥별 소나기! 끝 간 데 없는 저 하늘, 가득 펼쳐지던 동경과 꿈의 우주는 내 추억 한 구석에 남아 시나브로 옴쭉거린다. 

이와는 달리 2013년 2월 15일 러시아 첼랴빈스크 주에는 운석비(隕石雨)가 쏟아져 많은 사람이 다쳤다. 다 타지 못하고 지상에 떨어진 운석은 자칫 살상흉기가 될 수 있음이라. "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두어라/가까이 하려 하지 마라∥ 여름 밤하늘 그토록 빛나며 사라지는 별똥별도/가까이 하면 비수가 되어 꽂히는 운석파편일 뿐∥ 꿈과 선망의 대상인 정감어린 화자(話者)도/때로는 난폭한 공격자로 돌변할 수 있다/알코올성 치매가 아니어도/땅속 깊이 이글대는 마그마처럼/우리들 마음속, 펄펄 끓는 불길 때문이다∥ 별똥별과 운석비는 한몸의 두 모습/어쩌다 불벼락이 되어 내려치는 돌 쪼가리 스콜은/저 멀리 반짝거리는 추억으로 둘 때가 낭만이다∥ 우리들 참된 사랑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긴다/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두어라." 

내 졸음 자유시 ‘운석비’ 전문이다. 별똥별로 볼 때는 아름답지만 운석비로 맞을 때는 전혀 아니다. 난폭하다 못해 추악하다. 별똥별과 운석비가 한몸의 두 모습인 것처럼 아름다움에는 추함이 들어 있다. ‘미추(美醜)’는 따로 놀지 않는다. 인간도 별로 다를 바 없다. ‘미’가 ‘추’를 품고 사는 세상은 괜찮을 수 있지만 ‘추’가 ‘미’를 억누르고 사는 세상은 고통스럽다. 

요즘 사기·무고·위증 따위 거짓말 범죄가 판을 친다는 기사가 며칠 전 주요 경제신문 1면에 떴다. 2년 새 25%가 급증해 사회적 신뢰가 깨지고 경제도 타격을 입을 거라 한다. 추함이 득세하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일용직 근로자들의 한숨이 끊일 날 없는데, 나라 돌아가는 상황이 가당찮다. 서해상 공무원 피격사건, 라임·옵티머스 펀드사건, 4·15부정선거 의혹사건에 대한 선관위, 검찰·대법원의 미온적 대처, 전세가가 매매가를 넘어서는 주거사태, 안하무인처럼 군림하는 집권여당이나 있으나마나한 야당까지 이 모두가 추함의 일단이 아니랄 수 없다. 나 같은 필부도 쉬이 느끼니, 먹고 살기에 바빠 행동으로 나서지 못할 뿐 ‘이건 아닌데?’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민심은 저 별똥별과 다르지 않다. 폭발하면 대규모 운석비로 변해 쏟아질 수 있다. 평소 잠잠히 배를 띄우지만 여차하면 태풍격랑으로 배를 뒤집어버리는 물과 같다. 민심은 천심이요, 지나치면 하늘이 노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진정 서민대중을 위하는 정책은 초동급부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져야 한다. 이념적·획일적 사고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법 없이도 살아가는 여느 태평성대를 바라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추함을 품고 사는 세상이면 족하다. 참된 국리민복 정책은 아름답다. 곧바로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빈부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각자 살아가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면 아름답지 않을까. 그대로 두라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민심을 거스르지 말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두어라. 한 수 시조로 덧붙인다.

- 그대로 -

 절로 지는 한 잎 고엽
 그대로 참 아름답다
 
 우주 하나 떨어져도
 고요하기 짝이 없다
 
 그대로
 아름다우니
 이대로 다 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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