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일 전 이 공간을 빌려 ‘것봐라이즘’(Geotbwaraism)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이 같은 이념(理念) 이나 사상(思想), 또는 주의(主義)의 요체는 선견지명 효과를 노린다는 점이다.

‘것봐라이스트’(Geotbwaraist)라고 불리는 ‘것봐라이즘’ 추종자들은 하나같이 어떤 결과가 도출되기 전에 마치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력을 지닌 양 앞뒤 재지 않고 이것저것 마구 던진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얻어 걸리면 장사 밑천은 충분히 마련된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면서 물이 넘치는 것을 발견하고는 ‘유레카’(Eureka)라고 외쳤듯 그들은 ‘것∼봐(라)’를 목청껏 토해내며 우쭐댄다.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지만 ‘것봐라이즘’의 대척점에 ‘그럴줄알았어이즘’이 존재한다. 전자가 선견지명 효과를 노린 것이라면, 후자는 후견지명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이를 ‘사후확증편향’(Hindsight Bias)이라고도 한다. ‘뒷북 편향’도 같은 말이다.

팔장을 낀 채 우두커니 기다리다가 결론이 나오기 무섭게 자신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한마디 내뱉는다. ‘그럴 줄 알았어’(I knew it all along)라고. 개뿔, 알기는 뭘 알았을까마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후적으로 이것저것 갖다 붙인다. 그럴듯함으로 포장하기 위해서다.

사후확증편향은 기사 제목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어떤 사건·사고가 터지면 ‘예고된 참사’라느니, ‘예견된 인재’라느니 하며 호들갑을 떠는 경우다. 언론들은 그토록 끔찍한 사건·사고가 발생할 줄 알았다면 왜 사전에 막지 못한 것일까. 사후에 자신들의 예지력을 확인하기 위해 방치한 것일까.

적어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라면 선견지명까지는 몰라도 후견지명은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 아닌 능력이다. 즉, 후견지명은 결코 능력일 수 없다. 의지를 갖고 일부러 오답을 말한다면 모를까 답을 보고서도 답을 말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해서 사후평가는 늘 정확하기 마련이다. 

한데, 웃픈 현실은 의외로 이런 치들에게 놀아나는 ‘선수’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것봐라이즘’이나 ‘그럴줄알았어이즘’은 둘 다 퇴출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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