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제강점기 건축물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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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제강점기 건축물 어떻게 볼 것인가
철거vs보존 첨예한 대립 속 문화공간이 된 빨간벽돌건물
  • 기호일보
  • 승인 2020.10.2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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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위례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한국문화사 전공
김기영 위례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한국문화사 전공

경기도 전역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의 근대건축물은 대상 자체가 방대하지만 그간 여러 차례의 조사가 진행됐으며, 현재 지정·등록된 경기도 건축문화재는 문화재자료 2건, 등록문화재 15건으로 모두 17건이다. 

문화재자료는 시도지사가 국가지정문화재 또는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은 문화재 중 향토문화 보존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시도의 조례에 따라 지정한 문화재를 말한다. 등록문화재는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을 위한 가치가 커서 지정·관리하는 문화재다. 즉, 지정문화재는 보존을 주목적으로 문화재의 가치를 유지·계승하기 위한 것이고, 등록문화재는 보존보다는 활용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경기도에 있는 17건의 일제강점기 건축문화재를 유형별로 보면 군청이나 면사무소 등 공공기관이 6건, 역이나 역사(驛舍)가 5건, 양조장이나 성당 등 기타 유형이 6건이다. 

옛 안성군청 건물은 현재 안성1동 주민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옛 안성군청 건물은 현재 안성1동 주민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 군청과 면사무소 등 공공시설

붉은 벽돌과 붉은 기와가 인상적인 옛 안성군청은 1928년에 건립됐다. 근대 상업 도시로 번성했던 안성지역의 행정 중심시설로서 등록문화재 제709호로 지정됐다. 당시 관공서 건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벽돌 쌓기 기법 등을 사용한 건축적 특징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1928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당시 연화제 본건물 264㎡, 부속건물 80㎡, 군수관사 90㎡로 이뤄졌다고 했지만 지금은 본건물만 남아 있다. 1966년 군청사의 이전으로 안성읍사무소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안성1동 주민센터로 쓰고 있다. 

옛 대부면사무소는 1933년 상량(上樑)한 총 140㎡ 규모 2개 이상의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93㎡ 규모의 단일 건물로 돼 있다. 건물의 평면은 정면 5칸·측면 3칸으로 구성됐고, 정면 중앙에 현관 1칸이 돌출돼 있다. 내부는 벽체를 모두 철거해 변형됐으나 지붕 가구와 기둥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볼 때 가운데 칸과 좌우 칸으로 크게 3등분 되고, 가운데 칸과 서쪽 칸에는 전면으로 복도를 설치해 사무공간과 구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전면의 현관은 일본식 요소를 차용한 것으로 시대적 특징을 보여 준다. 

이 건물은 당시 공공시설이 주로 벽돌조나 일본식 목골조로 이뤄지던 것과는 달리 한옥 양식에 근대적 행정기능을 수용한 과도기적 행정건축의 특징을 보여 주는 드문 사례다. 현재는 대부도 에코뮤지엄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1930년대 부국원(왼쪽),현재 부국원 사진.
1930년대 부국원(왼쪽),현재 부국원 사진.

# 역과 역사(驛舍) 등 교통시설

우리나라 철도사는 일제의 대륙 진출 및 식민지 수탈의 목적으로 1899년 경인선의 노량진∼제물포 개통과 함께 시작됐으며, 이후 경부선·경의선·호남선·경원선 등이 차례로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철도 역사가 열렸다.

따라서 많은 역사(驛舍)가 일제에 의해 건립됐으며 현재까지도 잔존해 있는 실정이다. 양평의 옛 구둔역은 1940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중앙선의 간이역이다. 청량리∼원주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인해 기존 노선이 변경돼 2012년 8월 16일 역사가 폐쇄됐다. 당시 구둔역은 원래 자리에서 약 1㎞ 떨어져 있는 새 역사(驛舍)로 이전됐다가 2013년 구둔역이라는 명칭이 일신역으로 변경되면서 현재 구둔역이라는 폐역된 간이역을 가리키게 됐다. 이곳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촬영지로 활용됐으며, 서울 근교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밤하늘의 풍경이 예쁘다고 소문 나 있다. 

지평역과 구둔역 사이에 있는 석불역은 돌부처가 서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인데, 1967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역세권이 극히 미약해 이용객은 적은 편이어서 2008년부터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변경됐다. 석불역의 역사(驛舍)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원색적인 빨간 지붕과 파란 벽이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우러져서 지나는 이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양평 옛 구둔역이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양평 옛 구둔역이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 기타 건축물

지평막걸리로 유명한 양평의 지평에는 지평양조장이 있다. 등록문화재 제594호인 이 양조장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설립돼 3대에 걸쳐 전통 방식으로 전통주를 제조하고 있는 곳이다. 진천의 덕산양조장보다 설립 시기가 앞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인 셈이다. 

지평양조장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건축의 특징을 고루 담고 있다. 먼저 조선 전통의 목구조 위에 일식 목구조를 접합해 기본 공간을 구성했으며 흙벽돌로 외벽을 쌓았다. 환기를 위해 건물의 상단에 높은 창을 뒀고, 보온을 위해 벽체와 천장에 왕겨를 채워 넣었다. 서까래 위에는 흙을 받쳐 기와를 이기 위해 고안한 나무 산자 대신 대자리를 짜서 대체했다. 건물은 427.7㎡ 규모로 현재 복원공사 중이다. 

수원의 부국원(富國園)은 1916년 설립된 회사로 주로 농작물 종자와 종묘, 농기구, 비료 등을 판매했다. 지상 2층에 벽돌 조적조로 구조부를 만들었으며, 2층 바닥은 철근 콘크리트조로 돼 있다. 건물 정면과 후면에 3층 높이의 박공벽을 세웠다. 현재는 내부 지붕층을 개조해 3층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건물이 많이 낡았으나 특별한 개·보수 등을 하지 않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건축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1923년 이전에 신축된 것은 확실하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수원 부국원 건물은 근대 문화공간으로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수원 부국원 건물은 근대 문화공간으로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이 건물은 옛 가로(街路)의 근대적 경관 형성과 도시의 역사적 변화를 보여 주는 관청 건물로, 근대기 농업행정과 농업연구의 중심지로서 수원의 역사와 정체성을 말해 주는 곳이다. 해방 이후에는 수원법원과 검찰 임시 청사로 사용됐다가 수원교육지원청, 공화당 경기도당 청사, 수원예총, 개인 병원 등으로 이용돼 수원의 역사 및 도시의 변화와 함께 한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건물에 대해서는 두 가지 대립적인 가치가 계속 충돌해 왔다. 한편에서는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의 부산물이므로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다른 한편에서는 비록 일제의 잔재라도 나름의 역사성과 문화성을 갖춘 문화재이므로 ‘보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나라는 두 가지 입장을 절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은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서도 사후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옛 팔당역은 현재의 역사에서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고 일반인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 문화재로서의 기능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남양주시 와부읍에 있는 옛 팔당역 건물은 사후 관리가 부실해 문화재로서의 기능이 거의 없는 상태다.
남양주시 와부읍에 있는 옛 팔당역 건물은 사후 관리가 부실해 문화재로서의 기능이 거의 없는 상태다.

문화유산 자체의 속성으로 볼 때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은 전통문화 유산과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보존하고 또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조사에 입각한 예방적인 보호·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정보화를 통한 효율적인 보존 관리와 활용이 병행돼야 하며, 문화재의 과학적 보존과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전문인력의 양성도 수반돼야 할 것이다. 

글·사진=김기영(위례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한국문화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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