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트럼프와 바이든의 경쟁이고,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되면 한반도의 긴장이 더 높아지고, 누가 되면 한반도에 해빙 무드가 조성되리라고 보는가. 굳이 당선인을 거명하지 않아도 자명한 사실이 있다. 

인천이 개항되기 3년 전, 김홍집이 제2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하게 됐을 때였다. 김홍집은 청국공사 하여장을 만나 일본과의 관계는 물론 국제 정세에 대해 논의하게 됐고, 배석했던 청국 외교관 황준헌은 자신이 저술한 「조선책략(朝鮮策略)」을 향후 외교정책에 참고하라며 내놓았다. 김홍집이 귀국해 이 책자를 고종에게 바친 것은 당연지사. 

이 「조선책략」의 기본 내용은 중국과 가까이 하고(親中國), 일본과는 결속하며(結日本), 미국과는 새롭게 관계를 맺어(聯美國), 함께 러시아를 견제하자(制俄策)는 것이 골자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부터 갑작스럽게 다가온 낯선 서양 세계와의 상황에 어찌할 줄 몰랐던 조선 조정으로서는 꽤 구미가 당기는 충고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영의정을 비롯한 고위 대신들은 물론 고종 임금까지 이를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러나 영남 유생들은 퇴계의 후손인 이만손을 중심으로 1만 명 연서(連書)를 받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른바 ‘영남만인소’ 운동이었다.

서세동점의 격량 앞에서 시류에 어두운 유생들이 전통적 화이관에 입각해 시대착오적 반대운동을 전개했다고 단정하기에 앞서 따져봐야 할 점이 꽤 있다. 

훗날 국권 상실의 위기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민족의 활로를 찾으려 몸을 던진 이들이기에 그렇고, 우리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펴봐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그렇다.

「조선책략」은 형식상 황준헌의 개인 의견으로 포장돼 있지만 내막은 복양대신 이홍장의 견해이자 청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외교 노선을 담고 있었다. 

영국의 극동 정책에 사로잡혀 있었고, 러시아와의 국경 분쟁은 심각한 상황이었으므로 당연히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과 손잡고 미국과 연대하는 걸 원했던 것이다. 황준헌의 외교적 안목은 꽤 높이 평가해줄 만 하겠으나 그는 청나라의 애국자였지 우리 조선의 애국자는 결코 아니었다.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한창일 때 캐리 람 행정장관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가 있었다. 

"부모 모두 본토 출신의 홍콩 이민자로 1957년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그는 홍콩대를 졸업했는데 재학생 시절에 사회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본토의 칭화대와 교류를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인 적도 있고, 민주화 인사들과 깊은 교분을 맺기도 했다. 1980년 공무원이 되면서 달라졌다. 2000년 사회복지국장이 되자 복지 축소를 추진했고, 2012년 2인자인 정무사장에 취임하자 민주화 학생들에게 강경책을 썼다. 이후 친베이징 노선을 유지해 2017년, 홍콩인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음에도 베이징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행정장관에 올랐고 이후 시진핑 노선의 충실한 하수인 역할을 서슴지 않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무수히 많은 외신을 비롯 해외 석학과 국제 문제를 다루는 연구소 등이 토해내는 정보를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장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이기면 어떤 정책을 쓸 것인지 넘쳐나는 정보 홍수다. 

우리가 140여 년 전 그런 사상 초유의 격동과 시련을 맞이해 허둥댔던 상황과는 크게 다른 입장에 있으나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 숱한 정보·분석·정책 조언 가운데 오늘날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을 위한 건 얼마나 될까?

스스로의 시선으로 안팎을 살피고 시대의 엄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남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영남만인소’ 같은 운동도 그 방향이 어떻든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 위기가 닥쳐도 과연 얼마나 떨치고 일어설지 짐작조차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상황 인식일 것이다. 

무라카미 류라는 소설가는 자신의 나라 일본에 대해 ‘모든 게 다 있는데 희망만 없는 나라’라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먹고 살기가 불편하다 해도 과거의 기아선상은 없다. 그렇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시선으로 세계건 주변이건 살펴보지 않는 버릇이 계속되면 어떤 처방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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