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무형문화재 낙화장 전수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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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무형문화재 낙화장 전수자 인터뷰
뜨거운 인두로 그려온 31년 삶, 전통예술 온기 퍼뜨리다
  • 안유신 기자
  • 승인 2020.10.30
  • 1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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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달궈진 전통 인두로 종이나 나무에 낙화 작업을 하다 보면 옛 선비들이 즐기던 묵향이나 난향에 버금가는 불과 나무가 어우러진 고유의 향이 아주 은은하고 그윽합니다. 그 향기로운 그림, 낙화의 멋스러움과 매력에 빠져 오늘을 삽니다."

 국가무형문화재 136호 ‘낙화장(烙畵匠)’의 전수자 이성수(59)작가의 말이다.

 본보는 10월 어느 가을, 양평군 용문산 입구에 자리잡은 이 작가의 낙화 작업실 ‘운정화랑’을 찾아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예술 계승에 힘쓰고 있는 그의 삶을 인터뷰를 통해 알아봤다. <편집자 주>

무형문화재 낙화장(烙畵匠) 전수자 운정 이성수 작가가 작업실에서 전통인두를 사용한 낙화 작업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낙화장(烙畵匠) 전수자 운정 이성수 작가가 작업실에서 전통인두를 사용한 낙화 작업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낙화장에 대해 소개해 달라. 

▶낙화에서 ‘낙’은 한자로 지질 ‘낙(烙)’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불그림’ 또는 ‘인두화’로 불리기도 한다. 낙화는 민초들의 삶, 서민들의 희로애락 등을 담은 민화의 한 분야로, 종이나 나무·가죽 등의 바탕 소재를 인두로 지져서 산수화· 화조화 등의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다. 

우리나라에서 낙화에 대한 기원은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1788~1863)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수록된 ‘낙화변증설(烙畵辨證設)’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초부터 전북 임실을 중심으로 전승돼 왔다. 

우리나라 낙화의 기본 화법은 전통 수묵화 화법과 유사하지만 동양화의 각종 준법을 붓 대신 인두로 표현하며, 수묵화에 나타난 먹의 농담도 인두로 지져서 나타낸다는 점에서 독특한 차이가 있다. 

낙화장은 2018년 12월 27일 국가무형문화재 136호로 지정됐다. 보유자는 스승인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2호 청목 김영조 선생이다. 청목 선생께서는 1972년부터 낙화를 전승해 왔으며 현존하는 국내외 최고의 대가라 할 수 있다. 다수의 동양화를 모사하며 전통 낙화에 대한 숙련도를 높여 왔고, 전승공예대전 등 다양한 공모전에서 수차례 수상함으로써 낙화 전승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전통 낙화는 앵무부리인두와 평인두 2가지 형태로 전통 인두를 숯불에 달궈 3겹 한지나 나무에 인물·동물·꽃·글씨 등을 그리는 것으로 소중한 우리 민족의 전통 무형문화유산이다. 

-스승 ‘청목 김영조’ 선생과는 어떻게 만났나. 

▶청목 스승님을 만난 것은 정말로 천운(天運)에 가까운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군대를 다녀온 뒤 우연히 낙화 작품을 접하며 그 매력에 빠졌다. 이후 1986년 충북 보은에 은거하던 낙화 분야의 독보적 대가인 청목 김영조 선생을 찾아갔다. 어려움이 컸지만 스승님의 지도와 배려 아래 6년간의 수련 과정을 마치고 전수자가 됐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낙화인’으로서 사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낙화에 대한 남다른 긍지와 사명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스승님께서는 저에게 ‘구름과 능선’, 큰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운정’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다. 이로 인해 운정화랑이 탄생했다. 

1.무형문화재 낙화장(烙畵匠) 전수자 운정 이성수 작가의 작품 월출산 마애불(2013년 제38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수상작). 2.작품 ‘맹호도’(2018년)3.‘이재명 경기도지사’(2020년)
1.무형문화재 낙화장(烙畵匠) 전수자 운정 이성수 작가의 작품 월출산 마애불(2013년 제38회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수상작). 2.작품 ‘맹호도’(2018년)3.‘이재명 경기도지사’(2020년)

-양평군 용문산 기슭에 ‘운정화랑’을 열고 둥지를 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과 자연을 참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특히 산을 매우 좋아해 언젠가는 산속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을 꿈꿔 왔다. 여하튼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으니 꿈을 이룬 셈이다. 

1991년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 깊은 곳에 들어가 살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녹록지 않아 지금의 용문산 입구에 31년째 둥지를 틀고 작품활동을 해 오고 있다. ‘운정화랑’은 스승님께서 1주일간 함께 숙식하며 직접 터를 구하고 꾸며 주신 곳이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작품활동과 대표 작품 중 하나만 소개한다면.

▶청목 스승님과의 큰 인연과 가르침 덕분에 30여 년째 ‘낙화인’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국가무형문화재단이 주최한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특선 등 5차례나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특히 1995년 일본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고, 국내외에서 수차례 전시회도 열며 낙화를 알리는 기회도 주어졌다. 또한 아직까지 많이 부족함에도 수상작품 중 하나는 2018년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매해 소장하고 있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그래도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은 지난해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특선작으로 선정된 바 있는 ‘국보인 김홍도(金弘道)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를 낙화’로 재현한 작품을 꼽을 수 있다. 

무형문화재 낙화장(烙畵匠) 전수자 운정 이성수 작가가 작업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무형문화재 낙화장(烙畵匠) 전수자 운정 이성수 작가가 작업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앞으로 활동계획과 비전은.

▶욕심을 버리고 자연과 어우러지며 조화롭게 사는 삶이다. 매사 최선을 다하되 주어진 운명대로 순리대로 살고 싶다. 앞으로 낙화를 테마로 한 관람과 체험, 작품활동이 가능한 미술관, 테마박물관 등 복합·맞춤형 공간을 마련할 것이다. 그곳에서 다양한 낙화작품을 전시하고, 꿈나무 작가 등 다양한 이들과 옛 전통을 잇고 이들의 꿈과 희망을 함께 키워 가고 싶다. 

더불어 우리의 오랜 전통인 낙화의 우수성을 곳곳에 널리 알리는 공익캠페인도 전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기도와 양평군의 더 큰 관심과 전통예술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낙화장이 경기도 최초로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양평=안유신 기자 ays@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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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 13:59:15
우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