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인천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어요?" 며칠 전 지역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불쑥 나온 말이다. 사실 무엇을 기억하고 있냐에 따라 그 사람의 과거와 함께 됨됨이를 짐작할 수가 있다. 일테면 ‘똥고개, 개건너, 똥마장, 화장터, 수도국산’을 알고 있다면 나이 지긋한 인천 토박이일 것이고 ‘시맨스 클럽, 로젠켈러, 화백, 국일관’을 떠올릴 수 있다면 놀았던 사람이고, ‘엘로, 학익동’에 친숙하다면 좀 세게 놀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지명이나 상호들이고 지역 토박이 노인층이 아니면 모를 생소한 이름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억도 그리고 기억을 하는 사람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억들을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고 생활화가 되고 있다면 문화가 되고 이것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따르고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전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 전통과 역사라는 것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갖는 작은 기억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 고유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기억은 매우 소중하다 할 수밖에 없다. 기억의 특성은 휘발성이 있다는 것이고 사람의 생물적 한계를 넘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기억들을 기록하고 형상화해 보관되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사실 사소한 것일지라도 기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神)이 지배하던 16세기 중세 시절 우주관에 대해 처음 토를 단 것은 시골 방앗간 주인이었다. 「치즈와 구더기」라는 책에서 소개된 그의 세계관에 따르면 세상은 치즈와 같아서 어느 날 구더기가 생기게 되고 그중 활발한 것이 신이 됐다는 것이다. 서슬이 시퍼런 그때 말은 고사하고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어쨌든 그는 화형을 당하지만 그것을 기록한 덕분에 그때 일반사람들의 생각과 행태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사소한 기억들이 사료로서 값진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몇 단계 일반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중 첫 단계가 다양한 기억 즉 사료들을 수집해서 기록하고 체계화시켜야 하는 일이다. 사실 이러한 노력이 인천 내 민관 각 분야에서 진행돼 왔다. 예컨대 지역 사진작가들의 인천 기록 남기기 노력을 통해 인천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려는 것이나 창영동 헌책방 골목의 문화운동처럼 예전의 기억을 이어 가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박물관 즉 이민사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짜장면박물관 등이 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어 나름 인천 개개의 역사적 사료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산재된 사료들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기록하고 관리하는 곳이 바로 ‘인천역사자료관’이다. 즉 지역에서 일어났던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건과 일상적 기억을 담아 체계화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이러한 역할이 없다면 발현된 기억이나 사실들이 그대로 증발해 버리거나 무의미하게 방치돼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체계화된 자료는 학문적 분석을 통해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지역 내의 사건 및 사실을 분류하고 분석해 학술적 이론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곳이 ‘인천학연구소’이다. 이렇게 하여 인천의 사소한 일상적 기억이 소멸되지 않고 인천의 역사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인천의 정체성과 전통 그리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즉 이들 기관들에 의해 사건 및 사실 발굴, 기록 및 분석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야 인천의 과거와 미래가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더욱 중요한 일은 만들어진 구조물을 갖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인천의 전통과 역사를 만들어 후대를 교육시키고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최근 문화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는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일례이다. 이는 드라마나 영화와 소설에 대한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각종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추적 기관인 관이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 듯하다. 그동안 송학동 예전 시장관사에 있던 ‘인천역사자료관’이 폐쇄 운운하다 결국 신흥동 골목길에 있는 부윤관사로 이전한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 자리에는 개방형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나마 실낱 같던 인천의 역사 기록에 대한 노력들이 쇠락할까 걱정이 앞선다. 

인천이 국제적인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이 보존돼야 하고 기억돼야만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는 도시는 외형적으로 커질 수는 있지만 도시의 정체성도 특징도 없는 주위에 판박이 신도시와 별로 다를 게 없게 된다. 속이 없는 도시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거대한 수용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과 기록이 후대에 남길 무형의 자산이자 바로 그 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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