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세제 개혁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든 사례도 많으나 과도한 세금 징수는 나라를 망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세금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처럼, 실물 자산이 오르는 시기에 자산이 없는 사회적 약자는 가만히 앉아 세금을 엄청나게 낸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3년 전 5억 원 정도의 서울 아파트가 10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집 없는 서민은 돈 한 푼 써보지도 않았는데 두 배로 가난해졌고, 지방의 소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됐다. 

‘집값 인플레이션’은 그 자체만으로 많은 무주택자에게 감당하기 힘든 세금을 떠안긴 셈이다. 그러고 나서 정부는 2030년까지 시세의 90%로 공시가격을 올리는 증세 방안을 내놓았다. 이 와중에 상대적으로 싼 집들은 재산세를 낮춰주겠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합리적 방안처럼 보일지 모르나 이건 전형적인 ‘세금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재정학자 프린츠는 저서 「세금 전쟁」에서 "세금이 자주 정치적 의도로 전용되다 보면 전제군주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아마 과거 중화제국의 전통적 경제정책이 지닌 허실을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명·청 시대의 정책 기조는 오늘날의 복지국가 모델과 비슷했다. 성장보다 분배를 강조했고, 사회적 조화를 우선했으며 거둬들이는 세금은 매우 적었다. 백성을 굶기지 않는 것이 최대 목표였으므로 대규모 곡창제도로 기근에 대비했고 구제하는 데 열심이었다. 이상적 복지국가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조정은 부의 격차가 커질수록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할 위험이 크므로 상인과 상업경제를 억압하는 듯이 보였으나 실제로는 상인과 상업경제를 적극 이용하면서 굶어 죽지 않는 정도의 안정 사회를 유지함으로써 전제 권력과 관료 지배 사회를 공고히 했던 것이다. 

전제군주 체제 강화는 결국 과도한 세금을 납세자인 백성에게 지웠다. 힘없는 백성일수록 착취에 가까운 뜯김의 대상이 됐다. 과거시험 1, 2차 합격자나 혹은 관료 경력을 쌓고 귀향한 특권층은 각종 면세 혜택을 받으며 소유 토지를 계속 늘릴 수 있었던 데 반해 지역할당제 세금은 약자에게 부담이 전가돼 토지를 잃거나 심지어 일을 할수록 가난해지는 체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이라는 나라를 모방하며 성장한 국가 가운데 조선과 일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은 중국보다 한 술 더 떠서 상업을 억제하고 농업을 중시했으며 화폐경제는 더뎠고, 실물경제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곡창제도의 경우 인구 대비로 보면 조선의 규모가 훨씬 더 컸다. 기근 등이 발생했을 때 구제하는 대책이 확실했다. 

허나 관료를 비롯한 지방 토호들의 중간 착취는 중국보다 훨씬 더 심했다. 조선 후기 삼정 문란으로 도저히 생존할 수 없었던 농민들의 반란이 이를 증명한다.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세금이라는 명목하에 더욱 창궐했던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사무라이 계급이 지배계급이 되면서 봉건제도가 자리 잡았고, 과거제도 같은 관리 등용 방식이 없어 착취를 업으로 하는 자들이 자리 잡을 기회가 나타나지 않았다. 봉건 통치자들이 도덕적이지는 않았으나 약자에게 세금 명목으로 착취를 강제하는 경향은 조선이나 중국에 비해 거의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오늘날 세금이라는 이름의 항목은 실로 다양하다. 세수 1위의 소득세를 비롯해 부가가치세, 재산세, 교육세 등등. 그리고 우리 한국이 GDP 대비 조세 비중이 20% 후반으로 유럽의 복지국가 50%에 비해 낮다. 이를 두고 유권자 표심을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조세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는 해석이 많으나 분명한 것은 도덕경제와 균형 있는 성장을 조화시키면서 한국형 모델을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스페인이 몰락하게 된 까닭은 물품 거래마다 10%씩 매기는 ‘알카발라’라는 소비세 때문이었다. 물가는 계속 올랐고, 탈세와 밀거래가 횡행했다. 경기는 위축되고 뛰는 물가와 세금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신대륙으로 떠나갔다. 강대국이 졸지에 삼류국가로 전락해버렸다. 왕실이 함대 유지와 해외 팽창에 드는 막대한 재정을 감당하려 제 살을 갉아먹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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