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우리 속담 중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면 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진정 어린 사과를 한 후 악화됐던 인간관계가 호전된 실제 사례는 적지 않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종전보다도 훨씬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종교에서도 ‘회개(悔改)’를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매우 중시한다. ‘반성’과 ‘사과’의 가치가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마땅히 해야 할 ‘반성’과 ‘사과’를 끈질기게 거부하는 사례들이 있어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낸다. 일본은 한국과 주변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참회’해야 마땅함에도 아직도 뻔뻔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베 정권의 색깔을 그대로 물려받은 스가 정권하에서도 태도 변화가 전혀 없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이 난 지 2년이 지나도록 배상을 거부하고 있고, 독일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도록 독일 정부에 요청하는 철면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 내 일부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베를린 소녀상 철거 요청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와 다수의 여론은 이런 양심적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이래서야 우리나라가 어떻게 일본과 이웃나라의 ‘친분’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반성과 사과를 거부하는 뻔뻔스런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을 총탄으로 폭압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세력은 여전히 반성과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골프를 치고 다니면서도 자신이 피소된 재판에 불출석하는 불성실한 태도에 대해 국민들은 크게 분노한다. 

반성과 사과를 외면하기로는 검찰도 마찬가지다. 독재정권의 시녀 역할을 했던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검찰이 직접 정치에 개입했던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지난 10월 29일 대법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 8천여만 원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제기됐던 다스 소유 의혹 등이 모두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당시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혔더라면 그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부실한 수사를 하는 바람에 대통령 당선인을 뒤바꿔 놓는 중대한 과오를 범한 것이다. 역사 발전을 저해하고 후퇴시킨 정치 조작을 저질렀으니 그 죄책의 크기는 매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검찰 간부 중 어느 누구도 반성과 사과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다수의 검사들이 작금의 검찰 개혁 추진에 대해 집단반발로 보여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매우 실망스럽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검사와의 대화’에서 일부 검사의 불손한 태도에 대해 국민들이 ‘검사스럽다’라는 비판을 했었는데, 지금도 그때의 불손한 태도가 개선된 것 같지 않다. 어려운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검사로 임용된 최고의 엘리트들이 ‘패기와 기개’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격려할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추상 같은 패기와 기개는 ‘불의’ 앞에서 보여줘야 할 미덕이다. 불의 앞에서 굴종했고 또 불의를 만들어냈던 잘못들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하며, 패기와 기개를 아무 때나 보여서는 안 된다. 정의롭고 절제된 태도를 보일 때 국민들로부터 "검사스럽다"는 말 대신 "검사답다"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일본, 전두환, 검찰만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도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한다. 혹여 무의식중에라도 반성과 사과가 필요한 일을 만들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거나 마음 상하게 한 일이 없었는지 뒤돌아봐야 하겠다.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금년이 다 가기 전에 털고 갈 일이 있다면 털고 가야 한다. 무슨 일에건 진정성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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