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낙원동 낙원역사공원에 있는박필병·박승렬 공적비.
안성시 낙원동 낙원역사공원에 있는박필병·박승렬 공적비.

송덕비 또는 선정비는 관직에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거나 모범을 보인 관료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때 아쉬워하는 주민들이 스스로 세우는 기념비를 말한다.

주로 관찰사나 군수 등의 관료가 세운 공을 심사한 뒤 국왕의 재가를 받아 세울 수 있어 매우 명예로운 상징물이지만, 세도정치기에는 억지로 수하를 시키거나 집안에서 자비로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역민을 수탈하는 데 적극 협력한 친일 관료나 지역 유지의 송덕비가 면사무소나 행정복지센터, 학교나 공원 등에 버젓이 엄존하는 현실은 과연 친일세력의 어떤 공적을 감사해야 하고 기려야 하는지, 독립한 지 75년 된 나라의 정당한 모습이 맞는지 회의를 갖게 한다.

김명섭 단국대 연구교수/ 한국독립운동사 전공
김명섭 단국대 연구교수/ 한국독립운동사 전공

# 친일 경기도의원·군수·면장의 선정을 기원하는 ‘영세불망비’ 

안성시 낙원동에 있는 낙원역사공원에는 개발 직후 발굴된 고려시대 삼층석탑과 석불좌상과 함께 인근에 산재한 역대 관찰사·군수들의 공적비·선정비 46기가 한데 모여 있다. 많은 비석 중 중앙에 위치한 것이 눈에 띄는데, ‘경기도평의원 박필병 시혜불망비’이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705인 중 한 사람인 박필병(朴弼秉, 1884~1949)은 안성의 유지로 1920년대 면협의회 회원을 시작으로 1927년 경기도회 의원, 1933년 경기도회 의원에 당선됐다. 1939년 사재를 털어 안성농업학교(현 국립한경대학교)를 세웠다. 안성 농민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었으니 이를 잊지 말라고 비석에 새겼지만, 1949년 9월 죽을 때까지 친일 반민족행위에 대한 참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옆에는 그의 친척이며 읍내면 면장을 지낸 박승륙(朴承六)의 불망비가 있다. 그 역시 안성의 대부호이자 관료로서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했던 인물이다. 특히 박승륙은 중국 만주 참의부에서 독립군 활동을 펼치다 국내로 잠입해 조선총독을 암살하려 한 이천 출신 이수흥이 군자금 모금을 위해 그를 찾아왔을 때 단호히 거절했을 뿐 아니라 경찰에 신고해 체포하게 만들었다. "오직 청빈하고 강직해 모든 면민이 칭송했다"는 비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을 뿐, 이들의 친일 반민족행위에 대한 아무런 안내문이 없으니 무엇을 배우고 청산해야 할지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

반민족행위에 앞장선 경기도의원과 면장에 대한 노골적인 송덕비는 이천시 신둔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둔면 장동2리에는 경기도평의원을 지낸 조덕환(曺悳煥)의 영세불망비가 1937년 4월부터 지금껏 건재하다. 또한 신둔면사무소 앞 정원에는 5개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1918년 한봉교에 이어 면장을 지낸 이일창·이병석·이병태와 도순사 박태근에 대한 공적비가 너무나 당당히 서 있다. 더욱이 맞은편 정원에는 1919년 신둔면 주민들의 3·1 만세시위가 일어났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으니 친일과 항일의 상반된 유적이 혼재해 있는 실정이다. 

적극적 친일인사로 분류돼 있는 강원달 전 광주군수의 영세불망비.
적극적 친일인사로 분류돼 있는 강원달 전 광주군수의 영세불망비.

광주시 남한산성 남문 비석거리 안에는 역대 광주유수들의 공적비 사이에 1911년 광주군수를 지낸 강원달(康元達)의 영세불망비와 군참사를 지낸 이용식(李容植)의 거사비가 세워져 있다. 강원달은 광주에 이어 양주와 부천군수를 지냈으며 1926년 경기도평의회원으로 재직했는데, 한국병합기념장을 비롯해 천황즉위 기념장, 국세조사 기념장 등을 받았으니 부일 협력의 남다른 공적을 크게 인정받은 적극적 친일인사다. 하지만 여러 광주유수·관찰사 비석을 모은 곳에 나란히 있어 전혀 그런 사실을 알 수 없도록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안성시에는 안성군수를 지낸 최태현·서상준의 청덕불망비가,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백자자료관 앞에는 남종면장을 지낸 우윤재(丹山斌)의 시혜감사비가,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는 면장을 지낸 신규선의 치적비가 세워져 있다. 관공서와 지방 곳곳마다 친일 도의원·군수·면장들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망령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 친일유지들의 선심에 감사하라는 ‘선심·시혜비’

110만 대도시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의 관곡근린공원(옛 구갈공원) 길가에는 1930년 5월 세워진 ‘용수흥농회사장 오성선기념비’를 찾아볼 수 있다. 용인시에서 관리하고 작성한 안내판에는 이 지역 출신 오성선(吳性善, 1872~1950)이 자본금을 모아 농촌 개발과 빈농 구제에 힘써 농촌갱생지도자, 지방진흥 공로자로 표창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후 그는 1930년대 경기도평의회원에 이어 1939년 친일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의 이사를 역임했다. 지역 발전을 위해 부득이 친일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그의 공과를 정확히 기록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왜곡과 은폐가 아닐 수 없다. 농촌 진흥에 바친 그의 정신을 받들어 호를 따 만든 ‘우서문화재단’에서 매년 지역유공자에게 문화상을 수여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더욱 공정한 역사 평가가 절실해 보인다.

조선총독부에서 추진한 산미증식계획 추진에 감사하라는 뜻의 기념비로 수원시의 치산치수비와 수리조합기념비를 들 수 있다. 수원의 수리조합사업은 1927년 수룡수리조합이 인가돼 원천·신대저수지를 축조했는데, 이후 기념비인 수용수리조합기념비(水龍水利組合紀念碑)를 세웠다. 수원박물관 야외 전시장으로 옮겨진 이 비석에는 사업 추진 과정과 공적이 새겨져 있고, 악명 높은 동양척식주식회사 대표와 오성선·차유순 등 용인·수원의 친일지주 명단이 있다. 일제의 시혜와 선심에 의한 개발이 아닌 전통 농업구조의 붕괴와 중소 지주 몰락을 불러일으킨 현장의 교육장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주시 흥천면에 모여 있는 송덕비들.
여주시 흥천면에 모여 있는 송덕비들.

# 신도시 공원에 자리잡은 친일 ‘송덕비’ 

경기도 곳곳에 신도시 개발과 도심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송덕비나 기념물들이 새로 생긴 공원부지로 자리를 옮겨 앉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친일인사의 송덕비가 개발로 옮겨져 자리를 잡은 경우로 안성시 낙원동 낙원역사공원이나 공도읍 만정리유적공원, 여주시 흥천면 흥천생활체육근린공원 등을 들 수 있다. 대규모 택지개발 과정에서 발굴된 선사시대의 고인돌부터 삼국시대 묘역, 조선시대 집터 자리 등이 잘 전시돼 있는 안성시 공도읍 만정리유적공원에는 불망비와 공덕비 등도 다수 눈에 띈다. 온라인에도 ‘애민사상을 실천한 사람들 이야기로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소개돼 있다. 

하지만 이 불망비 중 1920~1940년대 공도면장과 참봉 등을 지내며 부일 협력한 인사들의 기념비가 5개 정도 숨어 있다. 1927년 공도면장을 지낸 이원화(李元和)와 1942년 남길우(南吉祐), 참봉을 지낸 박장화·신연균·김영배가 그것이다. 설립 시기도 일본 연호인 소화(昭和) 몇 년으로 선명히 새겨져 있다. 

남한강변인 여주시 흥천면 효지리에 2005년 조성한 흥천체육공원에는 김고길 효자정려비와 함께 인근에 흩어져 있던 5기의 송덕비가 이전해 있다. 이 중 1937년 흥천면장을 지낸 박노선(朴魯宣) 기념비가 있는데, 옆의 안내문에는 ‘구체적인 공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면장을 역임한 분으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는 알쏭달쏭한 해석이 달렸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이후 지역 면장(읍장)이나 도평의회원(도회의원), 군수를 맡아 활동한 관료는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 기여한 부일협력자로 구분된다. 박노선의 경우 구체적인 행적을 알 수는 없지만 1931년께 경기도평의회원을 지낸 뒤 흥천면장으로 봉직한 것으로 미뤄 친일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더욱이 그와 나란히 있는 비석 중 하나는 여주목사 등을 지내다 1905년 일제의 을사늑약에 항의하기 위해 자결한 홍만식(洪萬植)선생의 영세불망비가 옮겨져 있으니 친일과 항일이 이웃해 있는 괴이한 광경이 연출돼 있는 것이다. 

우리 곁에 너무나 가까이, 당당히 서 있는 친일 송덕 기념비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옥석의 구분으로 반성과 성찰, 미래교육의 현장으로 되살아나야 할 것이다. 

글·사진=김명섭(단국대 연구교수/ 한국독립운동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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