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봉 시인
문계봉 시인

지난 9월 3일, 대법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더는 법외노조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전교조는 7년 만에 다시 합법노조 지위를 회복하게 됐다.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같은 달 11일 교육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전교조 전임자로 일하다 해직된 교사 33명이 복직할 수 있도록 시도교육청에 안내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전교조가 불법노조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은 지난 2013년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해직 교원 9명에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면서부터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현직 교원만 조합원으로 인정되는 교원노조법상, 전교조가 해직 교원 9명에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것은 전교조 스스로 불법노조임을 자인한 것이라고 판단, 행정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은 고용노동부가 행정처분만 취소하면 대법원까지 갈 것 없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했지만, 조 교육감의 의견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교원노조법 개정도 무산됐다. 

당시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해직자를 노조에서 내쫓으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정부가 악법(교원노조법)을 악용(하여 법외노조를 통보)한 사례"라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후 합법적 지위를 잃은 전교조는 행정처분 취소와 합법성 쟁취를 위한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게 됐고 그 과정에서 많은 해직 교사가 양산됐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이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채 지지부진한 상태로 최근까지 온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치적 판결을 주도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전횡 문제가 불거진 2018년 즈음에 잠시 전교조 합법화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그간의 경과를 볼 때, 지난 9월에 이뤄진 대법원 판단은 전교조에게 최근까지 힘겨운 싸움을 종식하고 합법노조 지위를 회복할 희망을 안겨준 것이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밝힌 판결 근거는 "교원노조에 법외노조임을 통보하는 것은 단순 지위 박탈이 아니라 노조로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법외노조 통보 조항은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무효"라는 것이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전교조 행보도 빨라졌다. 당장 교육부를 상대로 지난달부터 단체교섭을 시작했다. 노조가 아니라는 통보를 받고 중단됐던 단체교섭을 7년 만에 재개한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안건은 이전에 제출했던 협상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일단 2013년 교섭 당시 요구했던 교원의 전문성 보장과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마련, 대학 교원과 동등한 정치적 지위 보장 등이 주요 내용이고, 학급당 학생수 감축 등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한 교육 현장의 상황 변화를 반영한 요구도 첨가됐다. 지난 1989년, 전교조 결성 당시 해직된 교사 1천500여 명의 피해 보상 요구도 제기했다.

사실상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판결과 해직 교사 양산은 국가 폭력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전 권위주의 정권의 비민주적이고 비교육적 정치 행태와 양승태 사법부로 대변되는 정치 판사들의 판단이 전교조와 관련한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 교체 일성(一聲)으로 적폐 청산을 내세운 현 정부에 와서도 이 문제는 해결이 요원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잃을 게 많은 수구세력 저항과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사법 권력의 저항이 만만찮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법무부와 검찰의 대립 양상을 보더라도 사법 적폐 청산과 사법 개혁, 특히 검찰 개혁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개혁을 승인하고 힘을 실어줘야 할 의회는 백년의 큰 그림 속에서 치밀하게 정초해야 할 교육개혁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정치적 득실만 따질 뿐이니, 교육 현장의 난맥과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로지 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온갖 악선동과 이념편중 교사들이라는 편견 속에서도 교육 현장의 문제를 끊임없이 극복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은 전교조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취소 판결은 고사(枯死) 직전의 학생 교육 현장에 새바람을 불러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리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합법노조로서 모든 지위를 회복한 건 아니지만, 일단 불법이라는 오명과 국민에게 강성 이념 교사 집단이라고 매도됐던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고 법외노조란 이유로 지체됐던 개혁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거라 판단된다.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한 모든 국민이 코로나19 여파로 파행을 겪고 있는 교육 현장의 문제를 극복하고 비대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교육 형식과 비전을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하게 해둬야 할 점은, 교육부가 진행하는 관 주도 개혁이든 구체적 교육 현장을 바탕으로 한 전교조의 개혁이든 교육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학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직원 노동조합의 일차적 설립 목적은 교사와 교직원의 권리 보장과 교육권을 확보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교조가 학생보다는 (탄압을 받아온 관성 때문에) 조직 보존 자체를 궁극의 목적으로 삼을 때 국민과 배움의 주체인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전교조도 이 문제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이 30여 년에 걸친 활동의 역사 속에서 보여준 참교육의 의지를 확인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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