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형님 그리고 칠순을 맞이하신 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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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님 그리고 칠순을 맞이하신 분들에게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 기호일보
  • 승인 2020.11.09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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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올해 작은형님이 칠순을 맞이하셨다. 내게 형님은 많은 의미를 지닌 분이다. 아버지이자 선생님이고 인생 선배이자 희로애락을 함께한 피붙이다. 칠십 평생 형님이 살아오신 발자취를 더듬어보자니 우리네 수많은 칠순 형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부모를 대신해 모든 집안일을 책임져야 했던 당시의 형님들. 형제가 많을수록 그 책임은 더 막중하게 어깨를 짓눌렀다. 시대적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형님도 그러셨을 테다. 그 시절을 곱씹을수록 형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형님이 태어난 1951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한 후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형편이 좋건 나쁘건 모두가 힘들었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몸을 움츠려야 했다. 전쟁으로 인해 곳곳이 폐허로 변했고, 피란 행렬이 이어졌다. 자칫 부모님 손을 놓치면 전쟁고아가 돼 머나먼 타국으로 입양을 갈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칠순 형님들의 삶은 출생 직후부터 참 고달팠다. 

지금은 아이 울음소리 듣기가 힘든 세상이지만 당시엔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할 만큼 집집마다 아이가 많았다. 우리 집만 해도 7남매다. 아이 한두 명 키우는데도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데 저 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돌봤을까 싶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형님들 누님들이 있어서다. 부모님이 일을 나가시면 자연스레 맏이들이 엄마 아빠 역할을 맡았다. 단순히 돌보는 것으로만 끝났으면 다행이다. 동생들 학비부터 생활비까지 형님들 누님들의 뒷바라지는 끝이 없었다. 

학업을 중단하고 일찍이 공장에 들어간 경우도 부지기수다. 공돌이 공순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어느 집에서건 이런 희생이 보편화됐다. 공장에서 중노동을 버티며 가족을 부양했고, 시간을 쪼개 밤을 지새우며 힘겹게 배움을 이어갔다. 이뿐 아니다. 달러를 벌기 위해 베트남전쟁에서 목숨을 담보로 싸우기도 했고, 열사의 나라 중동에서 살인적인 더위를 견디기도 했다. 그렇게 번 피땀어린 돈으로 가정을 지켰고, ‘한강의 기적’도 이뤄냈다. 45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을 무려 2만 달러까지 끌어올린 영광의 주인공이 바로 이들이다. 

우리 집에선 작은형님이 그런 존재였다. 다리가 불편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작은형님이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의 가장 역할을 대신했다.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운영하시는 구멍가게 수입으로 먹고살아야 했던 당시, 우리 형제 중 누군가는 가게 일을 도와야만 했다.  결국 형님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그 역할을 떠맡았다. 형님은 근면 성실한데다 손재주가 뛰어났다. 내가 도장 파는 기술을 배운 이도 바로 형님이다. 한창 혈기 넘치는 나이인지라 ‘왜 나만 희생양이 돼야 하느냐’고 내팽개칠 수도 있었지만 형님은 묵묵히 버텨냈다. 

대식구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이고 학비까지 부모님도 감내하기 힘든 뒷바라지를 해냈다.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내가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형님 덕분이다. 한창 꿈 많던 시절,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그 마음이 오죽했으랴. 나 또한 아내와 두 아들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면서 당시의 형님이 참 대단하셨음을 거듭 느낀다. 

형님은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데도 열심이었다. 늦었지만 차분히 공부를 시작해 서른 살에 기술직으로 공무원의 길에 들어섰고, 이후 30년간 성실히 근무했다. 틈틈이 손재주를 발휘해 집도 짓고, 농작물도 키우며 삶을 풍성하게 채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행복을 채워나가는 멋진 분이다. 나 역시 형님을 통해 배운 게 참 많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도 남 탓하지 않고 열심히 도전하면서 성실히 사는 법 역시 형님에게서 배웠다. 나뿐 아니라 우리 형제 모두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가르침이다. 

칠순을 맞이한 작은형님과 길고 긴 인생 역정을 지나온 수많은 칠순 형님들 누님들에게 동생으로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브라보 형님들 누님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살 만하고 행복합니다. 이제는 저희가 책임질 테니 꽃길만 걸으세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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