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움의 대명사이자 만인의 여인인 오드리헵번과 스파이 스릴러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뮤지컬 코미디의 대가인 스탠리 도넌 감독이 헵번을 주인공으로 첩보 영화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이전 필모그래피는 ‘로마의 휴일’(1953),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사랑은 비를 타고’(1952), ‘퍼니 페이스’(1957)로 충분히 성공적이다. 

로맨틱 코미디와 뮤지컬 코미디를 통해 성공적으로 대중과 교감하던 배우와 감독이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 작품이 바로 ‘샤레이드’(1963)다. 가식, 위장이라는 뜻의 샤레이드(charade)답게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케리 그랜트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인물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서스펜스의 거장인 앨프리드 히치콕의 페르소나인 케리 그랜트 덕분에 스파이 영화의 분위기가 잘 살아나긴 했지만 헵번의 매력과 스탠리 도넌 감독 특유의 낭만적 연출 또한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남편 찰리와 사이가 소원한 레지나는 이혼할 생각이다. 여행을 마치고 귀가한 레지나는 뜻밖에도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다. 더욱이 남편이 은닉한 거금도 함께 사라지면서 레지나는 졸지에 위험에 처한다. 돈을 노리는 악당들은 레지나가 거금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녀는 남편에 대해 몰랐던 사실이 많았다. 악당들이 그녀를 협박하는 가운데 구세주처럼 한 남성이 레지나에게 힘이 된다. 피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남자는 위기의 상황마다 레지나를 지켜주는데, 이후 정체가 모호해진다. 네 번이나 이름을 바꿔 가며 신분을 세탁하는 이 남자를 레지나는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미 처음 만난 순간부터 레지나는 정확한 이름도 모르는 이 사내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한편, 돈의 소재를 필사적으로 쫓는 세 명의 악당들도 차례차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레지나는 더 큰 공포와 혼란에 빠진다. 이제 남은 사람은 레지나와 본명을 알 수 없는 남자뿐이다. 과연 두 사람 중 돈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레지나는 이 남자를 믿어도 될까?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남자가 돈의 행방을 추적하는 이야기인 ‘샤레이드’는 마지막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특히 케리 그랜트가 연기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나이는 영화의 끝에 가서야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여주인공만큼이나 관객들도 그를 믿어야 할지 끊임없이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레지나가 첫눈에 반했듯이 우리도 케리 그랜트 특유의 능청스러우면서도 중후한 매력에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레지나 역의 헵번은 또 어떤가. 신분을 감추기 위해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커다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지만 위장할수록 깜찍함만 더해진 모습에 영화는 스파이물에서 로맨틱 코디미로 장르를 전환하게 된다. 

로맨스, 스크루볼 코미디, 첩보 스릴러를 오가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 이 영화는 종잡을 수 없는 유머와 두 주연배우의 쉴 틈 없는 콤비 플레이를 볼 수 있는 유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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