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던 날
116분 / 드라마 / 12세 관람가

태풍이 몰아치던 밤, 외딴섬 절벽 끝에서 유서 한 장만을 남긴 채 한 소녀가 사라진다. 오랜 공백 이후 복직을 앞둔 형사 ‘현수’는 범죄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던 소녀 ‘세진’의 실종을 자살로 종결 짓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소녀의 보호를 담당하던 전직 형사, 연락이 두절된 가족, 그리고 소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마을 주민 ‘순천댁’을 만나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 나가던 현수는 소녀가 홀로 감내했을 고통에 가슴 아파한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는 소녀에게 점점 더 몰두하게 된 현수는 사건 이면에 감춰진 진실 앞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은 표면적으로는 수사극이지만 수사 자체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삶에 주목한다. 죽음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사건 이면의 사람을 들여다보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는다.

 이 영화에서는 인생의 절망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찾아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서정적이고 담담하게 펼쳐나간다. 그럼에도 주저앉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절망 속에 누군가 내밀어 준 손이 큰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다며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스스로 갇히려는 세진에게 ‘너 자신이 남았다’는 순천댁의 대사는 먹먹함과 울림을 전한다.

 이 영화에서 김혜수는 소녀의 진실을 좇는 현수 역을 맡아 깊이 있는 연기로 극 전체를 끌어간다. 무너져 버린 일상에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하고 자책까지 하게 되는 초췌하고 어두운 낯빛부터 점점 소녀의 심정에 스며들어 가는 복잡하고 다양한 내면의 감정을 보여 준다.

 소녀를 마지막으로 본 무언의 목격자 ‘순천댁’으로 분한 이정은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순천댁은 미세한 변화의 눈빛과 표정, 몸짓 그리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목소리 없이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세진을 연기한 노정의 역시 아슬아슬한 10대 소녀의 외로운 감정과 미스터리한 모습으로 긴장감을 제대로 전한다. 

 인물들 간 정서적인 연대를 통해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용기를 전하고자 하는 이 영화는 12일 개봉한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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