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김준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조 바이든 민주당 대표가 우여곡절 끝에 미국 4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전 세계가 미국 선거에 초미의 관심을 갖는 것은 패권국이 각국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과정을 문제 삼으면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됐다. 그렇다면 의문은 사람들의 권력 의지가 그렇게 강한 이유는 무엇이고 이 같은 선거 제도가 과연 최선의 방식이냐 하는 것이다. 

독일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는 "권력이란 자원을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했다. 자기 뜻에 맞춰 자원 배분을 강제할 수 있고 경찰과 같은 위임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삼권분립과 같이 견제제도가 없다면 "짐이 곧 국가다"라고 한 프랑스 루이14세나 북한의 김정은처럼 절대군주 혹은 독재자체제가 된다. 이러한 권력을 쟁취하는 길은 왕정시대의 총 칼에 의한 무력보다는 대부분 선거에 의한 방법에 의해서이다. 

무력이야 힘이 센 자가 당연히 세력을 잡겠지만 선거는 권력자를 뽑아야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문제는 이게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폴리스 원로들이 모여 조개 껍질에 이름을 적어 넣은 투표방식을 택했다. 이때도 설득 및 선동 수단으로 뛰어난 대중 화술(話術)이 중요했던 것이다. 화술지도 전문가 집단을 스토아 학파라 부르는데 그중에 한 명이 요새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크라테스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능력보다는 화술을 통한 선동에 능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기 쉬운 법이다. 선거 폐해를 인지한 그의 제자 플라톤이 지도자가 될 사람을 미리 뽑아 훈련시키되 권력에 따른 혜택은 없애자고 하기에 이른다. 

선거제도가 다시 부활한 것은 중세의 왕정체제가 끝나고 인본주의가 나타난 근대 이후에 이르러서이다. 인구가 늘어나고 라디오와 같은 과학문명이 발전하다 보니 대중에 대한 선동은 더욱 쉬워졌고 결국 독일 히틀러 같은 이가 언론을 틀어 쥐고 선거로 총통에 취임한다. 신앙에 가까운 그의 전체주의적 광기 앞에는 합리적인 이성이 설 곳이 없는 법이다. 문제는 그가 합법적으로 총통이 됐고 또한 위임된 폭력을 휘둘렀던 것을 독일 국민이 용인했다는 데 있다. 결국 6천만 명이 희생당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서야 그 광기는 사라지게 되지만, 선거가 갖는 이러한 부작용은 민주주의라는 대의 명분이 바뀌지 않는 한 예전이나 지금이나 극복해야 할 사안이다. 

선거의 부작용 문제는 국내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다. 해방 이후 몇 번에 걸쳐 선거 과정에 다소 잡음이 있었지만 대체로 적합한 절차로 지도자를 선출해 왔다. 그동안 소위 전문 선거꾼도 나타났고 편법과 불법 선거 문화가 만들어졌다. 예컨대 막걸리 유세, 돈봉투, 차떼기 등의 회유, 협박, 협잡, 선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이용한 댓글조작, 가짜뉴스, 좌표 찍기 등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이 난무하지만 결국 선거에 따른 부작용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는 선거 공학이 선거 목적을 압도하는 것이다. 

혼탁한 선거 결과로 빚어지는 후유증은 유권자의 분열과 실망이다. 유권자의 분열을 막기 위해 지지층과 비지지층의 화합을 도출해야 하는데 양쪽의 지지를 받아 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자원이 한정돼 있고 양쪽이 세가 비등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번 선거로 승리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처음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국민 화합이라 했지만 그리 미덥지 않은 것이 그런 이유이다. 이 때 통치자가 종종 쓰는 방식은 그대로 지지층만을 끌고 가거나 관심을 국외로 돌리는 일이다. 일테면 외부에 적개감을 표시하거나 심하면 전쟁 도발을 시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선거 시에 내세웠던 여러 대의명분들을 실제로 구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무리 청렴 정부를 약속했다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 이번 정부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선거할 때와 통치할 때 즉 권력을 구할 때와 행할 때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이다. 결국 선거 부작용을 극복하는 것은 플라톤이 고민했던 것처럼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냉철한 이성을 갖춰 권력자를 감시해야 하는 것이고,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판단할 수 있는 지력(智力)을 키워야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어차피 불안전한 제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민주주의가 그렇듯 선거 역시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허구의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약속된 하나의 제도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제도가 옳으냐의 논쟁보다는 이미 약속된 절차를 지키고 끊임없이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선거 때마다 후보를 아이돌인 양 마냥 따르고 좋아하면서 통치 역시 잘할 것이라고 믿으려 한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선거와 통치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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