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바이든으로 굳어지는 결과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어깃장을 놓고 있다. 원래 그런 수준의 인물이었음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바다. 황당한 음모를 신봉하면서 각종 폭력을 서슴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큐어넌(QAnon)에 대한 감싸기가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어린이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이라고 극구 칭찬했을 때, 얼핏 들으면 꽤 괜찮은 인식이 들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전혀 아니다. 

정부의 최고 기밀 취급 등급(Q)에서 착안한 이름을 쓰는 ‘큐(Q)’를 지도자로 모시면서 그들은 좌파나 정·재계의 유력자들이 아동성학대를 일삼는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폭력행위를 정당화한다. 이들이 기승을 부리는 배경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이 숨겨져 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인종혐오, 극우 우월주의의 하수인들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 맹활약(?)했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창궐하고, 강대국 사이에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로 상승하는데 이란 핵 합의 파기, 파리기후협약 탈퇴, 중국을 악의 제국으로 찍으면서 뒤로는 무역 이익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어 마침내 유럽연합(EU)의 외교정책 전문가로 하여금 "코로나19로 인한 것보다 트럼프의 4년이 더 두렵다"고 한탄하게 한 바 있다. 

이쯤 되면 바이든의 당선은 세상이 기다려온 낭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보따리를 싸서 백악관을 떠난다고 세상이 좋아질까? 지금 세계 각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건과 사고, 혐오와 차별의 민족 갈등, 전쟁과 폭력의 형태가 어떻게 설명돼야 할까. 복잡하게 얽힌 모든 무질서의 실타래를 풀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트럼프 낙선은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직시할 용기가 없어 책임 소재를 돌리려는 얄팍한 수는 아닐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트럼프만 없으면 돼! 그만 없어지면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질 수 있어’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국제사회는 덜 시끄러워 질테고, 중국과 주고받는 험한 성명전도 부드러워(?)질테고, 우리 한국에 대해 터무니 없는 ‘방위비’를 내라고 협박하는 일 따위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구촌의 거친 문제아’들은 아직도 넘쳐난다. 아베가 물러난다고 한일 관계에 훈풍이 불 리 없고, 시진핑의 ‘중국몽’이 실현된다고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도 아니다. 푸틴이 옛 소련의 향수에서 벗어난들 시리아 내전이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 오스만 튀르크의 영광에 목매는 에르도안의 행태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울한 내일을 예고하고 있다. 

한반도를 비롯한 지국촌 곳곳은 지금 코로나19 이외에도 엉망진창인 일들이 무수히 많다. 강대국의 힘자랑이나 폭력적 외교를 등에 업은 패권 대결에 제동을 걸 인물이나 국제기구는 보이지 않는다. 도처에서 우후죽순처럼 발생하는 혐오와 차별에 맞선 테러, 지구적 기후재난에 대처하는 세계 리더십은 바닥에서 꿈틀거린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소감처럼 "평화는 아직 소식조차 없다. 그렇다고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기에 우리는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그 멋있는(?) 찬사를 되새겨 보고만 있을 것인지 착잡하고 암담한 현실이다. 

세상은 갈수록 위험해지고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는 경고는 지금도 계속 울리고 있다. 미국만의 일도 아니려니와 트럼프 탓만 할 때도 아니라는 말씀이다. 사탄적 공산화 음모를 소리 높여 외치는 극우파 사람들, 일본의 앞잡이를 찾아내서 혼내줘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 진영 논리의 벽안에 웅크리고 앉아 이들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 그리고 어두운 음모론을 신봉해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폭력을 서슴지 않는 정치세력 모두 사회 전체를 어두운 동굴 속으로 떠미는 세상을 냉철하게 곱씹어 봐야 한다. 

스스로 나의 신념에 근거가 있는지, 누군가의 음모론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자칫 병든 사회의 저급한 혈안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지금도 누군가는 쓰러지고 숨죽이며 한탄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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