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포던스를 담아낸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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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포던스를 담아낸 디자인
이영선 인하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11.16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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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선 인하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이영선 인하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최근 커피를 사러 들렀던 카페에서는 키오스크를 이용해 비대면 주문을 받고 있었다. 카페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키오스크 근처 바닥에 색 표시선으로 누군가 키오스크를 사용할 경우 어디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지, 기다리는 사람들 간 거리는 얼마나 돼야 하는지 표시선의 간격과 크기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간격을 유지하라는 안내문은 카운터 근처 한곳에만 작은 글씨로 표시되고 있었지만, 키오스크 근처에서 줄을 선 사람들은 충분히 간격을 유지해 기다리고 있었다. 

‘어포던스(affordance)’란 ‘어떠한 행동을 유도한다’는 뜻으로, 심리학자 제임스 깁슨은 어떠한 상황과 사물의 인상이 자연스럽게 특정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키오스크 주변 바닥에 색 테이프를 붙여서 만들어 둔 구역 또는 거리 표시선은 어떠한 안내문구나 알림보다 더 강력하게 행동을 유발하는 어포던스가 적용된 디자인이다.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하기 위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개념이기도 한데, 이러한 어포던스 개념은 UX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도널드 노먼이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에서 강조하며 좀 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 ‘어포던스 디자인’이란 사용자가 디자인된 물건 또는 상황, 상호작용을 접하면서 직관적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짐작하고 사용하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디자인은 물건이나 제품뿐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람과 로봇, 사람 간 상호작용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포던스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점은 사용자가 인지하는 제품의 속성에 따라 사용이 일어나는 것이며, 이는 기술 중심의 디자인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다. 즉, 제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고, 어포던스를 지각하는 정신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 디자인의 목표여야 한다. 새로운 기기를 구입했을 때 사용 방법을 알기 위한 매뉴얼을 봐야 하는 것이 아닌, 그냥 이렇게 해 보면 되지 않을까 알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것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포던스 디자인의 중요성은 훨씬 더 가깝고도 중요한 이슈다. 새로운 상품을 대량생산해 단시간에 보급하던 기능주의 시대에서 사용자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한 환경으로의 변화는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에 대한 고민과 요구를 더욱 증폭시켰다. 사용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의 학습이 필요하고 높은 수준의 배경 지식이 요구되는, 그렇기에 다시 사용하기 꺼려지는 디자인을 우리는 선호하지 않는다. 파란색 밑줄이 그어진 하이퍼링크는 자연스러운 클릭을 유도하고 ‘밀어서 잠금 해제’ 버튼은 사용자로 하여금 손가락을 움직여 보게 유도한다. 온라인 학습 상황에서 퀴즈를 스킵하지 않고 풀도록 만드는 구조나 다음 학습 단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수업의 흐름을 담은 구조 역시 이러한 어포던스를 담은 설계다.

체험과 편리함이 우선시되는 시대에 사용자 경험은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하고, 어포던스가 잘 설계돼 있어야 좋은 디자인이자 사용자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행동의 유도라는 것은 단순히 서비스 디자인이나 사용자 경험, 사용자 중심 설계라는 개념과 연결 짓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지시나 명령, 가이드 없이도 자율적으로 기대되는 행동을 해낼 수 있기에 어찌 보면 자율성을 추구하고 덜 통제된 환경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잘 존중하는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만 아니라 마스크 착용 의무화, 건강상태 자가진단 등 다양한 앱의 의무적 사용, 새로운 인사법, 공유 물건에 대한 사용 등 새로운 행동에 대한 기대가 우리 생활에 계속 추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2m 이상 거리를 유지하라는 직접적인 메시지도 좋지만 그만큼의 공간이 떨어진 발자국 스티커가 붙어 있는 엘리베이터 바닥처럼 이런 변화가 그저 불편하고 수고스럽게만 느껴지지 않도록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포던스를 담아내는 것, 어려운 일인가? 매일매일의 행동이나 사람들의 관심과 의도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해 본다면 장황한 설명이나 명령보다 더 강력한 어포던스로 문제를 쉽게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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