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일기를 읽다 보면 박장대소할 만한 에피소드는 없어도 읽는 내내 잔잔한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기록에는 사소한 희로애락이 가득하다. 소시지 반찬 하나로 행복해하고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연속으로 진 것이 속상하기만 하다. 소소하고 때론 실없는 농담으로 가득한 유년 시절의 그림일기는 순수한 마음, 단순한 행복의 의미를 일깨운다. 

1959년작 영화 ‘안녕하세요’는 어린 시절에 쓴 일기장 같은 작품이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주택단지가 펼쳐져 있다. 마당도 없이 오밀조밀하게 마주하는 집은 마을 사람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다. 중학생 미노루와 무조건 형을 따라 하는 초등학생 이사무는 똑같이 생긴 보급형 주택단지에 산다. 친구들과 방귀놀이를 하며 하교한 아이들은 옆집 TV에 푹 빠져 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매일 TV만 보고 싶지만 어머니는 공부하라고 성화다. 두 아들은 어머니께 TV를 사 달라고 조른다. 퇴근한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사항에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꾸짖는다. 큰아들은 "어른들이야말로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네요’처럼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응수하며 반항의 의미로 침묵 시위를 한다. 이에 동생 이사무도 합류한다. 한편, 마을 부녀회에서는 지난달 회비가 분실됐다는 소식이 돈다. 미노루의 어머니는 괜한 시비에 휩싸여 미운 털이 박힌다.

영화는 미노루 가족을 중심으로 TV를 둘러싼 갈등과 부녀회비 분실 사건을 다룬다. 어린아이들은 철이 없다고 볼 수도 있으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한편, 어른들은 회비 분실을 두고 갖은 추측으로 헛소문을 키우고 서로를 오해한다. 주말, 미노루 형제의 의도하지 않은 가출 소동은 미노루의 고모와 과외 교사 사이를 가깝게 이어주는 계기가 된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체 서사를 이루는 방식은 일상이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루는 형태와 닮았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청명한 푸른 하늘만큼이나 밝고 상쾌하다. 특히 TV가 없어 심술이 난 막내아들 이사무의 어이없으면서도 귀여운 행동은 극 전체에 엔도르핀으로 작용한다. 아이들의 침묵 시위는 집에 TV를 들여 놓으며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막내아들은 자신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영어 표현인 ‘아이 러브 유’를 연신 외치고도 신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훌라후프까지 돌린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난다. 영화 ‘안녕하세요’는 밝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한, 행복했던 유년 시절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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