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끝에서, 제31회 인천 노동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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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끝에서, 제31회 인천 노동문화제
안정헌 개항장연구소 연구위원
  • 기호일보
  • 승인 2020.11.18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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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헌 개항장연구소 연구위원
안정헌 개항장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11월 4일 송도 트라이 보울에서 제31회 인천 노동자문화제 공연이 있었다. 풍물패 더늠의 판굿으로 개막을 알린 이 행사는 ‘인천노동문화제를 말하다(연영석), 우리가 전태일이다(박준, 지민주),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박창근), 그 길의 끝에서(꽃다지)’ 순으로 진행됐다. 필자는 유튜브를 통해 공연을 관람했다. 현장에서 직접 관람하는 것보다는 감동이 덜할지 몰라도 공연자들의 마음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노동은 희망이야, 세상을 사는 시작이야"라고 노래하고 있지만 ‘노동’이 세상과의 작별이 되고 있는 현실과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연영식’의 "윤식이 나간다"의 노랫말이나, ‘지민주’의 "니가 조심하지 그랬냐고 얘기하지 마세요"라는 가사가 오랫동안 가슴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첫여름의 따뜻한 볕이 나뭇잎을 환하게 비춰 사람의 졸음을 재촉하는 듯했다. 황해의 거칠은 물결 위로 발을 움츠리고 사뿐사뿐 걸어온 바람은 아름다운 여자의 숨결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을 녹일 것같이 훈훈했다. 햇빛은 인항(仁港) 정미소의 유리창으로 기어들어와 쌀 고르는 여자 직공의 얼굴을 비췄다. 분가루 먼지가 자욱한 틈으로 흘러 들어온 광선은 쌀가루 횟박을 쓴 그들의 얼굴에 비치매, 그들은 유백색 구름 속에서  천사를 찾아 헤매는 방랑 여성의 무리와 같았다.

널따란 컨베이어 벨트가 그 위에 쌀을 잔뜩 안고 기계의 탈탈거리는 대로 박자를 맞춰 슬슬 풀려나올 때에, 그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가 좌우편에는 여러 여직공이 흡입 파이프를 손에 쥐고 쌀에 섞인 티를 고르고 있었다. 그들은 곁눈 한 번도 팔지 않고 흘러가는 쌀알을 하나씩 둘씩 세는 것 같이 아래만 내려다보고 앉았다.

이 소설은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익상(李益相)의 「키 일흔 범선」(1927. 5. 6.)의 한 부분이다. 일본 니혼대학을 졸업한 그는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진보적 문예운동에 뛰어들어 1921년 소설가로 등단했다. 「흙의 세례」, 「쫓기어가는 이들」 등의 단편소설과 「짓밟힌 진주」(동아일보), 「그들은 어대로」(매일신보) 등의 소설을 신문에 연재한 그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학예부장을 거쳐 1930년부터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로 재직했다. 이 당시 친일논설을 다수 발표해, 친일반민족 행위 명단에 포함돼 있다.

친일 이력을 가진 작가의 소설을 인용한 까닭은 일제강점기 인천의 정미소 여직공들의 노동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가루 먼지’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현장에서 "곁눈 한 번 팔지 않고" ‘티’를 골라내야만 하는 노동현실, 거기에 ‘어두운 때 나가서 어두운 때에 돌아오는’ 노동자들의 삶, 결국 주인공 ‘인경’은 이곳에서 한 달 남짓 일하고, 폐병을 앓고 눕게 된다. 제대로 환기도 되지 않는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만 했던 것이다. 

이러한 노동 현실은 강경애의 소설 「인간문제」에서도 잘 묘사돼 있다. 주인공 ‘선비’는 ‘대동방적공장’의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폐병’으로 죽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시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근로기준법을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갖기로 한 집회에서 업주와 경찰들이 현수막을 빼앗는 등 폭력으로 시위를 진압하려 하자 전태일 열사는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했다. 그런데 과연 그 현실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강경애의 「인간문제」 마지막 부분으로 글을 맺는다. 이 인간 문제!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를 위해 몇천만 년을 두고 싸워왔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앞으로 이 당면한 큰 문제를 풀어나갈 인간이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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