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상태바
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11.20
  • 1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TV 화면에는 대척점에 선 사람들의 분노한 표정이 적지 않게 보입니다. 국회의사당 안에도, 시청 앞 광장에는 대용량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분노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화가 지배하는 세상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은 ‘화’와 ‘애정’이라고 합니다. ‘화’가 발현되면 그 대상을 싫어하고, ‘애정’이 발현되면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취향이 갈리고 선호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화’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하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내는 자신과 화를 듣는 상대 모두에게 큰 상처가 돼 결국 모두 불행해집니다. 화가 나는 원인으로는 크게 외적 원인과 내적 원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외적 원인은 특히 오늘날처럼 지나친 경쟁 사회에서 더더욱 두드러집니다.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거나,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자신의 것을 빼앗겼을 때 어김없이 화가 치밀어오릅니다. 

다른 하나인 내적 원인은 외부와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빚어내는 분노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와 자신을 강자와 약자의 관계로 설정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약자’라고 여길 때 화가 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사회에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곧 스스로를 약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으로도 읽힙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약자’는 실제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약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며 분노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아잔 브라흐마)에는 스스로 자신이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제자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준 스승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젊은 제자가 깨달음을 얻겠다며 스승을 떠나 작은 섬에서 수행을 한 지 벌써 3년이 됐습니다. 이곳은 무인도라 배편이 없어 스승은 주기적으로 심부름꾼을 보내 생필품을 보내곤 했습니다. 제자는 자신이 얼마나 높은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자랑하고 싶어서 자신의 깨달음을 시로 써서 스승에게 보냈습니다. 

"젊은 중이 3년 동안 홀로/ 외딴 섬에서 용맹정진한 끝에/ 세상의 네 가지 바람에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네." 한 주가 지나자 심부름꾼이 스승의 답장을 갖고 왔습니다. 스승의 칭찬을 한껏 기대하며 편지를 열어본 제자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자신이 쓴 시의 각 행의 끝마다 어김없이 ‘쓰레기’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던 겁니다. 화를 참지 못한 제자는 스승이 계신 절로 씩씩거리며 갔습니다. 스승의 방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가서는 답장을 내던지며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지혜로운 스승은 답장을 펼쳐 들고 목을 가다듬은 뒤 제자의 시를 읽어 내려간 다음 제자를 응시하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흠, 그래, 젊은 중이여. 그대는 더 이상 세상의 네 가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네. 하지만 ‘쓰레기’라는 네 번의 말에 당장에 호수를 가로질러 달려왔군." 강자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강자’일 겁니다. 제자는 자신을 강자라고 여겼지만, ‘쓰레기’라는 스승의 질타에 그만 화를 내버린 약자였던 겁니다. 그러므로 3년 동안의 수행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화는 ‘약자’에게서 흔히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화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 화의 속성을 이해하면 조금은 수월합니다. 화는 들키는 순간 가라앉는 속성이 있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화가 올라오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면 화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날 때마다 "아,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 또는 ‘아, 내가 나를 약자라고 여기고 있구나"라고 인식하는 순간 조금은 진정될 겁니다. 화로 가득 찬 거친 세상에서 웃음과 관용이 지배하는 따뜻한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