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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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민주주의
김호림 칼럼니스트/전 인천대학교 겸임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11.20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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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지혜서는 이 땅에서 새로운 것이 없으며, 영구히 지속 가능한 것도 없다고 한다. 그러할지라도 인류가 고안한 제도 중에서 민주주의란 그 보편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정의, 진실, 시장을 구현할 수 있는 차선(次善)의 시스템으로 작동해왔다. 이러한 민주주의와 다원성이 계속 공격받고 있다. 2019년의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의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자유와 전 세계 민주주의가 14년째 연속적으로 쇠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양상은 주로 전체주의 국가의 인종, 종교와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자유 선거로 뽑힌 지도자들도 전통적 권력 엘리트 집단의 양식과 정치 규범에서 벗어나 대중주의를 내세운다. 

그런 후 그들은 소수 반대파와 의견을 달리하는 다양한 견해에 대해 극단적 정책을 감행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정부의 기능장애, 표현과 신앙의 자유 억압, 법치 실종으로 민주주의의 미래를 우려하게 한다. 이에 ‘프리덤 하우스’는 민주주의 회복제안의 일환(一環)으로 공공 부문에서의 민주주의 핵심 가치 강화와 보호, 선거 개입 등 전제적 행위자에 의한 조작방어, 민주주의 보호와 확산을 강조하고, 민간부문에는 기업활동 결과가 민주주의를 약화하지 않도록 하는 ‘UN의 지침 원칙’을 따르라고 권고한다. 

한편,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태동과 번영은 국민국가(Nation State)와 산업혁명 토대 위에 구축됐으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곧 국민국가에 대한 공격임을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민국가의 주권을 제한하는 세계화는 개별국가의 경제정책 수단을 약화하므로 정책 입안자들은 그들의 실책을 쉽게 세계화에 돌린다. 이뿐 아니라 개도국의 경우 독립된 사법부 부재와 언론의 권력 견제기능이 없으므로, 부패하는 정부는 오로지 권력 유지에만 집착한다. 그러기 위해 언론과 시민의 자유를 탄압하고 사법부를 무력하게 만든다. 더 위험한 일은 민주주의 체제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실패하게 되면 일부에서는 탈민주적인 전제 정부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강한 야당이 체제방어를 위해 맡겨진 사명과 기능을 다해야 한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론화한 영국의 정치학자인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는 이런 현상을 ‘후기 민주주의’(Post-democracy)라고 칭했다. 그는 후기 민주주의 사회를 "모든 민주적인 기구를 계속 사용을 하나, 이들은 점차 형식적 껍데기에 불과하다. 국가의 에너지와 혁신 운동은 민주적 영역에서 사라지고 정치-경제 엘리트 그룹으로 들어오게 된다"라고 정의했으며, 우리는 그러한 조건으로 점차 접어들어 간다고 했다. 그 이유로, 그는 ‘국가 공동목표 부재, 세계화, 공공 부문과 민간부문의 혼재와 사유화’를 들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은 첫째, 소수의 유권자가 투표 권한을 행사하나 그 결과를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즉 정치인들이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둘째 유럽의 경우 외국인 혐오 증가와 만연하는 국민 불만을 기회로 삼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인기 영합의 대중정당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권국가의 국내정치와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외국 정부의 개입문제를 들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게 된 이유에는 대의민주주의가 더 이상 대의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 책임은 점점 사라지고, 정치집단은 그들이 대표하는 시민과 결별해 자신들의 이념에만 봉사하는 한편, 유권자들의 투표 행위도 당파적이고 지역적 충성과 복지 수혜에 매몰돼 스스로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 과정이 공정한지, 그 시스템이 공명정대한 투명성을 유지하는가의 문제이다. 한때 세계화를 통해 많은 국가에 민주주의 체제를 확산하려던 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번 11월 3일의 대통령 선거 과정을 보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란 참으로 험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미 ‘헤리티지재단의 선거사기 데이터베이스’에는 많은 유형의 선거사기, 특히 부재자투표 사례가 나온다. 문제는 미디어들이 이런 사실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식 있는 자유 시민은, 누가 당선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시스템을 지켜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흔히들 민주주의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발전돼야 할 과정이라고 한다. 만일 시민들이 그 가치에 대한 확신과 지킬 의지가 없다면 이 제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기구가 아니라 규범이라고도 한다. 이는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을 가동하더라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진실한 정신’ 없이는 그 제도는 조작 가능한 게임에 지나지 않음을 뜻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감시할 시민 정신이 없다면 시민은 자유를 잃게 되고 민주주의가 부여한 권리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면 불행히도 민주주의는 ‘후기 민주주의’로 바뀌어 가게 될 것이므로 이를 지켜낼 지혜로운 선택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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