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기 위해 내놓은 혈세는 8천억 원이다. 정부가 앞서 이들 항공사에 지원한 5조 원까지 생각하면 국내 항공산업을 지키기 위한 의지는 확고하다. 정부의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가장 큰 경제적 이익을 고려한 부분도 있다.

바로 미래 성장산업인 항공정비분야(MRO)의 가능성이다.

# 기회-대한민국 성장 동력 항공정비산업(MRO)

2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MRO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900억 달러(한화 120조 원)이다. 204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2만 대 이상의 신규 항공기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 규모에도 국내 MRO산업 활성화는 아직 먼 얘기다. 이렇다 보니 막대한 국내 항공기 MRO비용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전문 정비업체가 부족해 자가 정비 능력이 없는 저가항공사의 경우 외국 업체 의존은 더 높다. 지난해 기준 국내 9개 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항공기 총 정비비용은 2조7천621억 원, 이 중 46%인 1조2천580억 원이 외국 업체로 가고 있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MRO비용만 줄여도 국내 항공사들의 경영 형편은 나아진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 그 시발점이다.

자가 정비 능력을 갖춘 대한항공·아시아나의 항공기 310여 대를 자체 정비하면서 국내 MRO산업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이번 합병을 주도한 정부 측은 이들 회사의 MRO사업을 분리해 별도 법인으로 만든다는 구상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항공산업으로 인한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까지 가능하다. 이는 한국판 뉴딜로 2025년까지 19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내건 문재인정부의 정책과도 호흡이 같다. 결국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은 대한민국의 ‘기회’인 셈이다.

# 위기-대한민국의 고질병 ‘지역이기주의’

국내 MRO가 활성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지역이기주의다. 대표적인 예가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의 MRO다. 이유는 단순하다. 인천공항 MRO는 경남 사천에 있는 MRO단지 조성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정비수요가 많은 외국 항공기가 몰리는 인천공항에 MRO를 조성하면 사천 MRO에 큰 위협이 될 것이란 얘기다. 이 때문에 사천시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진주시·남해군·하동군·여수시·순천시·광양시·고흥군·보성군)의 반대가 거세다.

결국 지역이기주의로 대한민국 백년대계 ‘인천공항 MRO 조성’은 멈춰 선 상태다.

문제는 지역이기주의가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공항은 지난 5년간 항공기 정비 미흡으로 인한 지연·결항 등 비정상 운항 건수가 5천여 건 발생했다. 지연·결항률도 연평균 10%씩 증가했다.

그런데도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으로 인한 신설 MRO법인 추진은 여전히 지역이기주의가 영향을 끼치는 분위기다. 사천에 본사를 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MRO 신설 법인에 참여할 경우 남해안남중권지역에 MRO법인 유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국익과 무관한 지역이기주의로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이 변질될 수 있다.

이러한 구도는 정부가 8천억 원의 혈세를 들이고도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을 실패로 내몰 수 있는 ‘위기’로 우려된다.

안재균 기자 a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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