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전오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권전오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정원을 만든 것은 르네상스시대 이후라고 한다. 르네상스를 주도한 이태리 상인들이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 계단식 정원을 만들었고 이어 주도권을 넘겨 받은 프랑스는 평면에 기하학적인 정원을 대규모로 만들었다.

평면 기하학적인 정원을 대표하는 정원이 베르사이유 궁전이다. 그후 역사의 바퀴는 영국으로 굴러가 영국의 전원풍경을 묘사하는 자연풍경식 정원이 탄생하게 된다.

이 영국식 정원은 산업혁명 이후 왕과 귀족만을 위한 정원시대에서 모든 시민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공 공원시대로 이어진다. 

영국 자연풍경식 정원은 양들을 키우는 넓은 초원, 그 배후의 숲과 호수를 한 폭의 그림처럼 현실 정원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경치를 빌려온다는 의미에서 차경이라고 하는데, 자신들의 정원 경계를 넘어 저 멀리 양들이 풀을 뜯는 초원 경관까지를 빌려와 자신의 정원인 양 즐겼다고 한다. 

그럼, 정원 경계부와 양들이 풀을 뜯는 초원 경계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경계에 울타리가 없다면 정원이 아닌 것이 되고 초원에 있어야 할 양들이 정원으로 들어와 정원에 심어둔 진귀한 꽃과 나뭇잎을 뜯어 먹어 버리면 이 아니 곤란하겠는가? 그래서 하하기법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하하기법이란 무엇일까? 실은 간단한 아이디어이다. 정원경계를 수로처럼 깊게 파고 수로 가운데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정원에서 보면 수로 깊은 곳에 울타리가 있으니 울타리가 보이지 않는다. 날개가 없는 양들이 수로를 건너려면 아래로 내려가야만 하는데 수로 가운데는 높은 울타리가 있어 넘을 수 없다. 그럼 왜 이 기법이 하하기법이냐 하면, 정원 밖 양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만 풀을 뜯는 것이 신기해 가까이 가서 본 즉, 이런 재미난 구조가 있어, 허허… 하하… 하다가 하하기법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정서진은 경인아라뱃길 조성 과정에 조성된 시민휴식공간이다. 동해에 있는 정동진과 비견해 정서진은 해지는 석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라 나 역시 여러 번 출사를 다녔다. 정서진에서 바라보면 조수간만에 따라 넓은 바다가 보이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갯벌을 만나기도 한다. 정서진 앞 갯벌 사이 바다(수로)는 강화도 동편 염하수로와 연결돼 옛날 한양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물길이었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강화도 남단에 있는 마니산과 길상산, 바다 가운데 이름 모를 무인도가 있고 그 사이로 석양이 진다.

석양이 아름다운 서해 도시 인천에서 대표적인 경관 조망점이 정서진이다. 

사진을 찍으러 왔을 때도 그렇고 자전거를 타고 와 바닷가에 있는 장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볼 때도 느끼는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높이 2m가량 되는 하얀색 철재 울타리다. 정서진 앞바다는 편안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넓게 갯벌이 펼쳐져 있고 아라뱃길 수문이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공간이다.

그리고 보안문제도 있다. 따라서 해안변을 따라 높이 2m가량 되는 울타리를 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사진을 찍을 때면 옥에 티와 같이 흰색 철재 울타리가 긴 띠를 이루며 서해 풍경의 진한 맛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격이 되면 아쉽기가 그지 없다.

고즈넉하게 서해를 바라볼 때도 흰색 울타리는 눈에 거슬려 깊은 상념의 맥을 끊곤 한다. 

사실 울타리를 따라 조금 높은 둔덕이 있고 둔덕에는 곰솔이 심어져 있으며 나무들 사이로 장의자가 있다.

그러나 이 높이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을 이렇게 장황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왕에 정서진에 투자를 많이 했다면 조금 더 투자해 서해와 석양을 질리도록 볼 수 있게 조망 공간을 더 높고 예쁘게 조성해 주면 어떨까 싶다. 그러면 훗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허허, 하하 하며 서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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