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 탐정의 모습은 두 개의 캐릭터로 양분된다. 

큰 키에 다소 마른 체격, 사냥 모자와 망토 코트, 파이프 담배와 돋보기로 대표되는 탐정 셜록 홈즈는 전체적으로 날카롭고 예민한 오라를 풍긴다. 귀족적이고 클래식한 이미지의 홈즈와는 달리 평범한 듯 보이지만 묵직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탐정도 있다. 

줄담배, 중절모, 트렌치코트, 리볼버 권총으로 연상되는 이 인물은 다부진 체격과 선이 굵은 마스크 등 거친 남성의 느낌이 강하다. 

홈즈가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탐정 캐릭터라면 후자는 하드보일드 탐정의 대명사다. 누아르 영화 속 탐정의 전형을 완성한 인물, 바로 필립 말로다. 레이몬드 첸들러가 창조한 필립 말로는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열한 거리를 묵묵히 걸어가는, 외롭지만 정의로운 탐정으로 남자 중의 남자’다. 영화 ‘잘 가요 내 사랑(1975)’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필립 말로 캐릭터를 가장 뛰어나게 표현한 명작으로 꼽힌다.

영화는 조 디마지오가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가던 1941년을 배경으로 한다. 전직 수사관이었던 필립은 가출 청소년을 찾아주는 시시한 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사립 탐정이다. 그런 그에게 의뢰인 무스는 7년 전 연락이 끊긴 옛 연인 벨마를 찾아달라 한다. 

쇼걸로 활동한 벨마의 정보를 수소문한 끝에 정신병원에 입원했음을 알아내지만 그 사람은 진짜 벨마가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 별것 아닌 이 수사에 경찰 고위 관계자 및 거물급 인사들이 관심을 보이며 사태는 복잡해진다. 

거물들이 찾는 사람은 벨마가 아닌 의뢰인 무스로, 필립에게 무스의 행방을 찾는 데 협조할 것을 종용한다. 수상한 낌새를 감지한 필립이 순순히 협력에 응하지 않자 경고, 협박, 미행, 감금, 폭행 등이 이어진다. 그럴수록 필립은 벨마라는 여인을 찾아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고자 한다.

필립 말로가 보여 주는 하드보일드 탐정은 논리 정연한 추리로 사건을 명쾌하게 마무리하는 셜록 홈즈와는 결이 다르다. 

필립 말로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관객들을 어둡고 지저분한 로스앤젤레스의 뒷골목으로 이끈다. 베일에 싸인 여인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영화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아내는데, 하류 인생부터 고위 권력자까지 다채로운 계층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민낯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한다. 지저분한 밤거리를 비추는 네온사인 불빛, 그 아래 나뒹구는 술병과 뿌연 담배 연기는 불황기 사회를 가득 채운 공허와 절망을 그리고 있다.

필립 말로는 폭력을 경멸하는 우아한 탐정이 아닌 술에 취한 밤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적인 탐정이다. 냉소적인 농담을 내뱉지만 밑바닥 삶을 이해하는 따뜻한 감성을 지닌 필립 말로는 하드보일드 탐정 캐릭터의 원형으로 자리잡는다. 

영화 ‘잘 가요 내 사랑’에서 탐정을 연기한 로버트 미첨은 소설 속 필립 말로의 시니컬한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큰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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