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호 부천지원 민사·가사조정위원
조수호 부천지원 민사·가사조정위원

법언에 ‘pacta sunt servanda(계약은 지켜져야 한다)’가 있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하루에도 수많은 종류의 계약을 맺으면서 생활하고, 맺어진 계약은 인간이 공기로 호흡을 하듯 무의식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인간이 매 순간 맺어지는 수많은 계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스러운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 상태’가 될 것이다. 이성적인 인간은 일찍이 이러한 사실을 염려해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무언의 약정을 도출해 낸 것이다. 

오늘날 부동산은 개인이 가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가격 등락이나 부동산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매우 민감하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매도인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을 어기고 이기적인 계산으로 종종 계약을 파기하기도 한다. 계약체결 과정에서 의사표시의 불일치나 하자로 무효나 취소되는 것이 아닌,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했음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경우이다. 국가는 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양심과 관행의 질서를 보완하기 위해 법질서를 정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계약은 약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해제권이 발생하거나 당사자가 합의해 해제할 수 있다. 또 한편, 민법은 제565조 제1항에서 ‘매매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 당시에 금전 기타 물건을 계약금, 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교부한 때에는 당사자 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정상적으로 맺어진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자를 규제하고 있다.

매매계약 체결과 이행 과정을 보면, 당사자 간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작성한 후 계약금을 수수하고 날짜를 정해 중도금과 잔금을 수수하게 된다. 그런데 계약금 수수는 매매계약의 종된 행위이기는 하지만 별도의 계약으로서, 계약금의 수수가 없는 한 계약금계약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계약금이 전액 수수된 경우에 한해 민법 제565조 1항에 의거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매수자가 계약금 일부만을 지급하거나 단지 계약금을 지급하기로 약정만하고 교부하지 않은 이상 요물계약인 계약금계약은 성립되지 아니하여 민법 제565조 제1항의 계약해제권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므로, 계약금을 받기 전 단계에서는 매도인이 일방적으로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계약이 일단 성립한 후에는 당사자의 일방이 이를 마음대로 해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고, 결국 매도인이 계약금 일부를 수령한 상태에서 부동산 매매계약을 해제하려면 매도인은 정해진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하고 해제할 수 있을 뿐 수령한 금액만큼 배액 상환으로는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이는 매수인도 마찬가지이다. 가계약금을 수수한 경우는, 민법 제565조 제1항은 임의규정이어서 가계약금 수수 당시 매도인이 가계약금만 반환하는 것만으로도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약정했다면 매도인은 가계약금만 반환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된다. 

이기적인 인간은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를 어기고 사익을 추구한다. 토마스 홉스는 인간이 자연상태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으므로 국가를 구성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관행이나 윤리 도덕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성문법을 만들어야 했다. 계약금의 배액을 돌려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민법 제565조 1항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예외적이고도 보완적인 조항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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