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을 개업한 젊은 의사의 첫 환자는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 치료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에는 병원에 달려온 그녀의 남편과 ‘엄마’를 외치며 눈물을 흘릴 어린 자녀들에게 그는 꺼내기 힘든 말을 해야만 합니다. 의사로서, 특히 자신이 치료한 첫 환자가 건강을 되찾는 모습을 고대했었는데, 저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겁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의사의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었을 겁니다.

이런 경우, 독자 여러분이 괴로워하는 이 의사에게 어떤 도움말을 주어야 그가 예전처럼 환자를 정성을 다해 대할 수 있을까요?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아잔 브라흐마)에서 저자는 이렇게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자네가 만약에 의사의 임무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거라 믿는다면, 이런 실패로 인해 앞으로도 많은 고통을 받을 걸세. 환자가 죽는 일이 종종 있을 테니까. 하지만 자네의 임무가 환자를 ‘돌보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절대 실패할 일은 없을 거야. 환자의 병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경우에도 자네는 언제나 그들을 돌볼 수 있게 될 테니까."

기대하지 않던 불운한 사건을 당해도 이렇게 그 사건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면 오히려 자신의 사명을 더욱더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의지로 나타나곤 합니다. 의사의 원래 생각대로라면 죄의식 때문에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의 직분을 ‘고치는’ 일에서 ‘돌보는’ 일로 바꾼 뒤에는 그의 삶도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환자를 돌본다는 사명으로 환자를 치료했고, 다행히 완치되었다면 보람 있는 일이고, 비록 돌아가셨더라도 자신의 극진한 정성과 보살핌 속에서 돌아가신 것이니까 그리 큰 상처는 되지 않을 테니까요.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에 따라 죄의식에서 허덕일 수도 있고, 안타까운 그 일이 오히려 자신의 직분을 더 충실히 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Deep Change or Slow Death」(로버트 퀸)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을 쉬운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놀이공원을 방문했는데 어린 아들이 그네타기를 고집하며 다음 행선지로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고 있다면, 그 장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첫째는 ‘행인’의 관점입니다. 그는 어린아이에게 완력을 쓰는 부모를 못마땅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사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그 사건을 보는 분석적인 관찰자의 관점이면서 동시에 재판관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부모’의 관점입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화가 난 부모가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데리고 다음 행선지로 떠나야만 하는 부모를 이해하는 관점입니다. 이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는 책임감을 지닌 사람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셋째는 그네를 움켜쥐고 떼를 쓰고 있는 ‘아이’의 관점입니다. 더 놀고 싶은데 떠나자고 하니까 울면서 소리치는 것으로 거칠게 저항하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관점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 가지 관점 모두를 가슴에 품고 사건을 대하면 부모나 자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을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한 가지 관점만이 옳다고 믿고 있는 한, 갈등이나 분열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하나의 사건에도 사람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법정 스님은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풍요로운 감옥에 비유한 미국 철학자 마르쿠제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감옥 속에 냉장고와 세탁기가 갖춰져 있고 TV와 오디오가 놓여 있다. 그 속에 사는 우리는 자신이 그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어떤 관점으로 세상과 만나고 있었는지, 혹시 나의 관점이 감옥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보는’ 의사가 아니라 ‘고치는’ 의사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지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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