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형 인천시의회 자치분권특별위원장
남궁형 인천시의회 자치분권특별위원장

동학농민혁명이 한창이던 1894년, 전주성을 점령했던 혁명군 최고지도자 전봉준과 당시 전라감사였던 김학진이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원칙에 따라 ‘집강소’ 설치에 합의했다. 그 후 집강소는 조선 정부가 공식적으로 농민군에게 통치권을 인정한 것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집강소와 관련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바로 백정 출신으로 이름 없이 ‘동록개’(동네 개) 로 불리며 차별받던 천민의 이야기가 있다. 당시 천민 취급을 받던 도축업에 종사하는 백정 동록개는 지역 농민군 지도자이며 동학의 대접주였던 김덕명을 찾아가 "신분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본인의 전 재산이었던 본인의 집을 집강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증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양반과 천민 계급을 없애고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바라는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록개가 그렇게 바라던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은 그 후 126년이 지난 현재까지 요원하기만 하다.

지난 12월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법률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정부안 제26조에 규정돼 있던 ‘주민자치회’와 관련한 법적 근거 마련 조항이 삭제됐다. 당초 정부안에는 제26조에 주민자치회의 근거 및 활성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조항이 법안에 그대로 포함됐다면 현재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시범사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반쪽짜리 주민자치회가 완전한 주민자치회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동 조항이 삭제됨으로써 주민자치회에 대한 읍면동별로 조직을 조직·운영 할 수 있도록 한 근거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완전히 삭제돼 주민들이 진정 바라던 주민자치회의 실질적 운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주민자치의 근간인 주민자치권 강화 없이 지방자치와 자치분권, 균형발전은 생각할 수가 없는 불가분 관계이며, 주민참여 활성화 없이는 현재 중앙에 종속돼 있는 지방정부의 역할과 위상 강화를 통한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생각할 수 없다. 

이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주민이 주인 되는 주민자치 실현을 통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국민의 열망에 찬 물을 끼얹는 행태를 중지’하고 행안부 원안대로 ‘주민자치회 근거조항’을 포함해 본회의에 상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국회가 ‘주민자치회 근거조항’을 되살려 국민에게 조금이나마 다시금 희망을 드릴 수 있기 바란다.

126년 전 주민자치회의 역사에 근간이 되는 집강소를 만들어 마을자치기구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모두 바쳐 백성들이 주인인 조선, 신분차별 없는 평등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백정 동록개의 꿈이 서려 있다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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