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나채훈<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몽니는 끝났고, 사실상 바이든 당선자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한 달여 전에 끝났어야 할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남겨준 문제는 간단치 않다. 당선자와 낙선자 모두 7천만 표 이상을 얻어 이념적·종교적·인종적·지역적 균열이 너무나 분명해 트럼프식 포퓰리즘이 전혀 쇠퇴하지 않았다는 진단부터 섬뜩하다.

미국에서 성공한 비즈니스맨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던 4년 전부터 정치·언론의 유력 인사들은 우파 포퓰리즘을 염려했었다. 지금 그 폐해는 ‘엘리트 대 국민’이라는 새로운 균열을 부각시키고 있다.

바이든 당선자가 첫 일성으로 ‘통합’을 외친 것이 시의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과연 미국이 ‘한 국민’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는 바는 난망이다. 오히려 바이든이 보여주는 ‘유리천장 깨기’가 트럼피즘에 실망했던 전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기대하는 바가 크다.

지난 8월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카멀라 해리스를 부통령에 지명했고, 이들이 트럼프를 누르면서 카멀라 해리스는 백악관의 유리천장을 깨부순 최고위직 기록을 갱신했다. 여성이고 유색인종이며, 아시아계 이민자의 딸이라는 그 높은 장병을 넘어 백악관의 유리천장까지 깨다니…….

이외에도 ‘여성파워’는 바이든 정부에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재닛 앨런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미국 재무부 232년 역사상 첫 재무장관으로 지명되어 인준 절차를 기다리고 있고, 미 정보수장인 국가안보국장과 유엔대사 지명자도 여성이고 국방장관 물망에도 여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미 백악관 공보팀의 7명이 모두 여성으로 채워진 터. 바이든이 향후 인사에서 얼마나 유리천장을 갤지 기대되는 현실이다.

우리 입장에서 부럽기 그지없다. 사회는 주요 분야 참여 인원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하는 여성할당제가 1970년대 북유럽국가들이 정치 분야에서 여성 의석을 40~50%까지 의무화하면서 시작된 이후 바이든 당선자 시대에 미국에서 활짝 꽃피웠다는 의미는 무엇을 뜻할까.

우리는 미국을 이야기할 때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대선 후보로 유세 다닐 때 돈이 없어 버스를 타고 다녔고, 정거장마다 그의 친구들이 밭갈이용 수레를 준비해서 도왔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 그때 링컨이 수레 뒤에서 연설한 대목이 심금을 울린다. "어떤 사람이 편지로 제게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제게는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는데 이 둘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입니다. 이외에 사무실이 하나, 탁자 하나, 의자 세 개, 벽쪽에 큰 책꽂이 하나가 있어요. 그 속에 누구나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들이 있습니다. 저는 가난한 데다 깡말라서 얼굴만 크고 살이 붙지 않는 체질이죠. 제게 의지할 만한 것이 정말 없어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어찌 보면 무기력하고, 자신을 낮추는 정치적 수사쯤으로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이 ‘낮춤의 성실’함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기 시작하여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극단적 총명 인재들과 이기심이 넘치는 인사들을 백악관에 배치하였다. 링컨은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적극 도와 결국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 모두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몹시 즉흥적이고 자기본위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단연 손꼽힌다. 이에 비해 바이든 당선자 스타일은 옛 친구들을 잊지 않으면서 여성의 역할을 중시하며 손상된 미국의 세계 리더십을 회복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세계의 미래사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포퓰리즘과 팍스 아메리카나의 변화 속에서 트럼프식 정치가 남긴 후유증과 바이든 정치가 가져올 변화는 물론 링컨의 솔직하고 겸허한 스타일이 주는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버리고, 배울 것인지는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관심이자 중대한 전환의 시대를 규정할 핵심적 요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어제 기파이 독일 가족부장관이 여성우대를 기업 임원에 적용하는 결정을 두고 ‘역사적인 돌파구’라며 극구 칭찬했다. 바이든의 돌파구가 성과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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