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살기 좋은 마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주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생생히 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초자치단체장을 맡은 이후부터 매일 매 순간 고민하는 부분이다. 다행히 그 해답은 현장과 사회 구성원에 있다. 현장 구석구석에서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주민들을 두루 만나 얘기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채워진다. ‘이런 게 진짜 필요한 행정이구나’를 깨달아가면서 서구의 행복을 알차게 키워가는 요즘이다.

 최근에도 주민참여의 놀라운 힘을 경험했다. 구민뿐 아니라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폭넓게 참여해 일상의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다. 사업명부터가 이목을 끈다. ‘즐겁고 안전한 룰루랄라 등굣길’이다. 연희동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과 학생이 마을 안전 문제를 직접 발굴하고, 개선 방안을 함께 고민하며 신나는 등굣길을 만들어가는 사업이다. 이번 등굣길 사업은 주민자치회와 연계해 주민참여예산으로 추진됐다. 주민의 권한과 책임이 한층 강화되는 거다.

 올해 2월 일찌감치 주민참여협의체를 구성해 속도감 있게 진행하려고 했지만 예기치 못하게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사업 주체인 주민과 학부모, 학생 참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고 아쉽게도 무기한 연기됐다. 하지만 주민이 합심해 어렵게 만들어낸 예산인 만큼 비대면 방식을 활용해서라도 집행하자는데 의견이 모였다. 그렇게 9월 초부터 주민들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안전총괄과가 지원 부서로 나서 연희동 주민참여협의체 구성원 아홉 분의 동의를 구해 카카오톡 단체방을 개설했고, 주민의 주도 아래 열띤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최초 간담회를 통해 사업 대상지가 서곶초등학교와 서곶중학교로 좁혀졌다. 뒤이어 해당 학교 아이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안전교육과 현장조사가 진행됐다. 아이들의 시선으로도 학부모의 시선으로도 바라보며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느낀 거지만 관 주도로는 파악하기 힘든 내용이 대다수였다. 그렇게 취합된 의견을 선별해 패널로 제작한 후 우선순위 파악을 위한 투표를 각 학교에서 실시했다. 총 12개에 달하는 요청사항은 안전총괄과가 취합, 항목별로 분류해 도시기반과, 공원녹지과, 보건소, 경찰서 등에 전달했다. 이 중 압도적인 득표수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모두 요청사항 1순위로 꼽았던 ‘인도 한가운데 위치한 전봇대를 옮겨주세요’는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지난 금요일 구청 도시기반과 직원과 한전 직원이 현장을 직접 다녀왔고, 아이들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최대한 빨리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생각해보면 전봇대와의 인연이 꽤 깊다. 서구청장 취임 후 가장 먼저 해결했던 민원 역시 전봇대를 뽑은 거였다. 가좌완충녹지 인도 한복판에 6년째 전봇대가 있어 통행에 불편이 크다는 얘길 듣고 취임 6일 만에 실행에 옮겼었다.

 룰루랄라 등굣길 사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이름부터 직접 고민하며 예산을 따내기 위해 노력한 주민참여협의체 위원님들의 책임과 열정, 학부모님들의 헌신적인 참여, 관련 부서와 직원들의 발 빠른 지원 아래 사업 추진 과정을 상세히 공유하면서 아주 작은 사항 하나까지도 주민이 직접 의견을 제시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내며 함께 결정했다는 점이다. 아이들 역시 주체적으로 우리 주변의 위험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 방법까지 발굴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 깊숙이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로 힘든 가운데 우리 서구는 대한민국의 중심을 향해 눈부시게 비상 중이다. 한국지방자치경쟁력지수 평가에서 전국 69개 자치구 중 종합경쟁력 분야 1위를 달성한데 이어 일자리대상에서도 우수사업 부문 기초지자체 1위에 올랐다. 여기에 인천시 군·구 중 유일하게 서구만 이번 등굣길 사업을 포함해 무려 2건이 ‘인천시 2020년 주민참여예산 우수사업’에 선정됐다. 주민의 주도 아래 순항 중인데다 좋은 사례로 뽑혀 상까지 받으니 이보다 더 신나고 기대되는 사업이 있을까 싶다.

 서구는 내년까지 22개 전 동의 주민자치회 전환을 마무리한다. 주민참여예산 역시 주민의 눈높이에서 주민의 참여와 결정 아래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한다. 주민이 스스로 제안하고 직접 결정하는 정책이 마을을 바꾸고 서구를 행복도시로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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