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금년 정기국회는 다른 어느 해보다도 국민들의 관심을 더 크게 받았다. 국가의 운영과 국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법들이 많이 다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일 통과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말도 많고 야당의 반대도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다수당의 힘으로 법안 통과를 강행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민주주의는 죽었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물론 여야가 합의해서 법안을 통과시켰더라면 좋았겠지만 여당은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밀어붙인 것으로 보여진다. 

야당 등 공수처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우려를 찬찬이 들여다보면 나름 수긍이 가는 대목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공수처는 과연 누가 견제할 것인가’, ‘검찰에 대해서는 수사권·기소권을 분리한다면서 공수처에는 수사권·기소권을 모두 부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공수처가 너무 막강해져서 괴물(공수처공화국)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공수처를 독재(반대세력 탄압 등)의 수단으로 삼을 위험성이 크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담보할 수 없다’ 등등의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공수처법 찬성론자들은 ‘공수처와 검찰이 상호 견제하게 된다’, ‘공수처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수단이다’, ‘공수처 설치는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오랜 열망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등의 해명을 내놓고 있지만, 반대론자들의 우려를 명쾌하고 깨끗하게 불식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15일 공수처법 공포안이 국무회의 의결 후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곧바로 공포·시행됐다. 정부와 여당은 후속조치를 치밀하게 준비해 공수처법 반대론자들이 제기해온 우려사항들이 한낱 ‘기우(杞憂)’였음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야 할 엄중한 책무를 진다. 만일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드러나면 ‘그럴 줄 알았다’는 비판이 쏟아질 것이고, 반신반의하며 소극적으로 찬성했던 국민들도 등을 돌릴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공수처법 개정안 국회 통과(12.10) 다음 날인 11일 여론조사를 한 결과 여당이 주도한 공수처법 국회 통과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는 응답이 54.2%로 절반을 넘었고 ‘잘된 일’이라는 응답은 39.6%에 그쳤다. 이 같은 여론은 1년 전인 2019년 12월의 공수처 법안 통과 당시와 상반된 모습이다. 당시 리얼미터가 법 통과(12.30) 다음 날인 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잘됐다’는 긍정평가가 54.2%, ‘잘못됐다’는 부정평가가 40.4%였다. 이러한 여론 반전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아무튼 공수처법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최근 심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민심의 변화를 무겁고 두렵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으므로, 어떤 제도는 반드시 좋고 어떤 제도는 반드시 나쁘다는 식의 획일적 판단은 합리적이지 않다. 더욱이 제도가 좋다고 해서 그 운영이 100% 잘 되리라도 보장은 없다. 제도가 좋더라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사심(私心 또는 邪心)을 갖고 ‘악의로써’ 운영하면 나쁜 결과를 발생시킬 것이고, 제도가 좀 미흡하더라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사심(私心 또는 邪心) 없이 ‘선의로써’ 운영의 묘(妙)를 살려 운영하면 좋은 결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금년 정기국회에서 ‘권력기관 개혁 3법’이라 일컬어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경찰법 전부개정안,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안이 모두 통과됐다. 검찰, 공수처,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은 잘 운영하면 국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잘못 운영하면 국민에게 큰 해악을 주게 된다. 

마치 칼(劍)을 잘 쓰면 유용하지만, 잘못 쓰면 몸을 다치게 되는 결과가 되는 것과 같다. 이들 권력기관들은 모두 국민의 ‘검(劍)’이지 개인과 특정세력의 ‘검(劍)’이 아니다. 권력기관들이 진정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제도의 성패는 이를 쓰는 사람의 탓에 크게 달려 있다. 이번에 통과된 ‘권력기관 개혁 3법’에 미흡한 점이 드러난다면 수정·보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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