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전경.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전경.

제목에는 항일유적지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이 용어는 법적·제도적 용어가 아니라 일상적인 용어다. 즉, 다른 용어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독립기념관에서는 독립운동사적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항일유적지이건 독립운동사적지이건 모두 그 대상이 되는 범위는 상당히 넓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 역사에서 항일운동이나 독립운동의 영역에 포함되는 행위 유형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말구국운동, 의병활동, 3·1운동, 의열투쟁, 애국계몽운동, 민족주의 독립운동, 해외 독립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 사회운동, 문화운동 등이 모두 항일운동이나 독립운동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범주와 관련되는 가옥·시장·건물·거리 등이 항일유적지나 독립운동사적지가 되는 셈이다. 

김기영 문학박사
김기영 문학박사

이보다 좀 더 명확한 법적·제도적 용어로는 현충시설이 있다. 현충시설(顯忠施設)이란 국가유공자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건축물·조형물·사적지 또는 국가유공자의 공헌이나 희생이 있었던 일정한 장소 등으로서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는 데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현충시설에는 독립운동 관련 시설과 국가 수호 관련 시설이 있다. 그러므로 독립운동과 관련되는 현충시설이 바로 본 주제의 논의 대상이 되는데, 구체적으로는 독립운동에 관한 사실 또는 독립유공자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설치하는 기념비·추모비·어록비와 그 밖의 비석 및 탑, 독립유공자의 공훈과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상징물, 독립운동을 한 장소, 독립운동과 직접 관련된 기념관·전시관, 독립유공자의 사당·생가 및 부속건물 등이 그것이다. 

국가보훈처의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의 독립운동 관련 현충시설은 모두 88개가 되는데 유형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현충시설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근본 목적은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의 현충시설은 탑과 비석(기념비 포함)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탑과 비석은 상대적으로 설치 및 관리가 쉽지만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기에는 한계가 있다. 즉, 내용 위주로 돼 있으므로 주입식이고 형식적이며 만든 사람의 주관적 입장이 많이 반영된다. 또한 긍정적 측면과 공로만이 강조돼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 예도 있다. 게다가 상당수의 자치단체가 독립운동가와 친일인사의 기념비나 공덕비를 같은 장소에 모아 놓은 예도 있어 식민잔재 청산과 독립운동 선양이라는 근본 목적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 있는 3.1운동 순국기념탑.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 있는 3.1운동 순국기념탑.

이런 문제점을 생각하면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는 데 가장 적합한 현충시설은 기념관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앞에서 봤듯이 경기도의 경우 이러한 기념관이 극히 소수다. 그래도 경기도에서 주목할 만한 현충시설을 기념관 위주로 몇 군데 소개해 보고자 한다. 

경기도에서 3·1운동과 관련되는 기념관으로는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이 손꼽힌다. 이곳에는 영상실과 제1전시실 및 제2전시실이 있고 주변에는 23인 순국묘지, 3·1운동 순국기념탑, 23인 상징 조각물, 스코필드 박사 동상 등이 있다. 또 3·1정신 교육관이 있어서 애국심을 기르는 장소로서는 아주 적격이다. 그리고 총연장 31㎞에 이르는 화성 3·1운동 만세길이 조성돼 있는데 15군데의 항일유적지를 차례로 탐방하면서 애국선열들의 발자취를 직접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체험시설이다. 

안성 3·1운동기념관도 훌륭한 시설을 자랑한다. 원곡면 칠곡리에 있는 이 기념관에는 전시관, 광복사, 만세고개 기념비, 안성 3·1운동 기념탑, 무궁화동산, 체험교육실 등이 있다. 일제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죽산과 양성을 안성에 합쳐서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만들게 되는데, 안성 3·1운동기념관은 양성·안성·죽산 세 개의 지역별로 3·1운동에 대한 자료를 전시관에다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놓았다. 

경기도에서 의병활동과 관련되는 현충시설로는 의병의 고장인 양평의 의병묘역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일제에 항거해 의병활동을 하다 장렬하게 산화한 양평지역 출신 호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양동면 석곡리 산74에 마련됐다. 양지바른 정남향에 자리잡은 데다가 산줄기가 양쪽에서 감싸고 있어 포근한 느낌을 주는 양평 의병묘역은 2007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추모비, 의병들의 묘역과 지단, 어록비와 공적비 등이 설치돼 양평 의병들의 활동 내용과 공적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봉사활동과 체험활동을 겸할 수 있는 훌륭한 교육장소다. 

독립운동 중에서는 애국계몽운동 등 각종 민족운동도 그 비중이 매우 높다. 이와 관련된 현충시설로는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최용신기념관을 손꼽을 수 있다. 샘골에 자리잡은 최용신기념관에는 4개의 전시공간과 체험전시실 및 교육영상실이 갖춰져 있으며 최용신 묘소도 있어서 애국계몽운동의 살아있는 교육장이 되고 있다. 

최용신 독립운동가.
최용신 독립운동가.

최용신(崔容信, 1909~1935)은 식민지 수탈 때문에 피폐한 농촌사회의 부흥을 위해 농촌계몽운동에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다. 그는 ‘조선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는 생각에서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했으며, 1931년 10월 YWCA 파견교사로 당시 화성군(華城郡) 반월면(半月面) 샘골에 파견됐다. 농촌을 살리기 위한 그의 눈물겨운 행적은 심훈(沈熏)의 소설 「상록수(常綠樹)」에서 실제화돼 농촌운동의 본보기가 됐다. 안산시의 상록구라는 명칭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애국심이란 말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속해 있는 나라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국가에 대해 헌신하려는 의식과 신념을 말한다. 모든 사람은 천부적으로 어느 한 민족이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추구하는 마음이 곧 나라사랑 정신의 기초이며 공동체의 존속 근원이 되는 셈이다. 우리의 경우 일제강점기에는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정신이, 한국전쟁을 전후해서는 체제 수호의 호국정신이, 그리고 현대에서는 민주정신과 지구촌 의식이 나라사랑 정신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국가 정체성은 국민이 국가에 대해 갖는 심리적 일체감과 충성심이나 애국심과 같은 신념 체계로서 국민적 단합과 결속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그러므로 국가 정체성의 정도는 대체로 나라사랑 정신의 정도에 비례하며, 결국 나라사랑 교육은 국가의 존속과 안전을 위해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나라에서는 실정과 형편에 따라 현충시설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나라사랑 교육을 시행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현재의 교육 방법은 국가적 위인이나 순국선열 및 각종 역사적 사건에 관한 의식활동, 계기 교육, 글짓기나 포스터 만들기 등의 일회성 교육으로 이뤄져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일방적인 전달식 교육 방법이나 형식적이고 주입적인 접근보다는 체계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설득력에 의해 수용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고 능동적 탐구를 통해 의식 속에 내면화되도록 해야 하며, 또한 감성을 자극해 체험할 수 있는 나라사랑 교육이 현장에서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 

안성 원곡면 칠곡리에 위치한 안성 3.1운동 기념관.
안성 원곡면 칠곡리에 위치한 안성 3.1운동 기념관.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독립운동 시설 대부분이 비석과 탑이어서 다른 시설에 비해 특별한 전시나 체험활동 소재가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각종 기념관을 많이 증설해 체험활동이나 역할놀이, 스토리텔링 등으로 효율적인 나라사랑 교육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살펴보면 우선 스토리텔링 등의 방법을 많이 활용해야 한다. 사실 이야기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고 가장 오래된 문화 전승의 방법이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은 추상적·상징적인 호국선열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적절한 교수·학습 방법으로써 독립정신 함양과 호국선열 선양을 좀 더 재미있게 배우고 기억하게 해 동영상 세대의 감성 발달에 이바지할 수 있다. 나아가 다른 시대와 환경을 만나게 함으로써 다양한 사회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게 하고, 또한 언어 사용 능력을 신장시켜 진정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화성 3·1운동 만세길.
화성 3·1운동 만세길.

다음으로는 현장 체험교육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역사 인물 교실, 역사 탐방, 전시관 관람, 독후감 작성, 동영상 제작, 체험 사진 콘테스트, 글짓기 대회, 발표 및 토론,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활동, 봉사활동, 역할놀이, UCC 제작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OSMU는 하나의 콘텐츠를 가지고 공연, 소설, 동화, 만화,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전시, 축제, 테마파크, 교육, 데이터베이스, 음식, 의복, 디자인 등 다양한 콘텐츠와 연계해 개발하는 전략을 말한다.

항일유적지는 다른 문화자원에 비해 더욱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며 역사적 실존을 매우 생동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원이다. 또한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에 모두 관련돼 있으므로 이를 교육적 자원으로 개발한다면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 교육과 나아가 국가 정체성 교육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글·사진=김기영(문학박사, 위례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