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현존하는 우리나라 우체국 중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이라는 지명도를 가진 인천우체국이 연수구 연수동으로 이전하면서, 이곳은 2005년 1월부터 인천중동우체국으로 명칭이 바뀌어 운영돼 왔다. 그러다 건축물 정밀안전진단 결과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2019년 5월 이후부터 사용이 중단됐다. 문화재 훼손이 염려돼 더 이상 우체국으로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 인천시는 인천우체국을 우정사업본부로부터 매입해 시민문화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을 수립했으나 아직까지 그 구체적 활용 방안은 알려진 바가 없다.

조선에서 근대적인 우편제도 업무를 담당하는 우정총국을 설치하고 홍영식(洪英植)을 우정총판으로 임명한 것이 1884년 4월 22일이었고, 그해 11월 18일 서울의 우정총국과 인천분국을 개설했다. 이 인천분국이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우체국이다. 일본에서는 1871년 4월 20일 우편업무가 시작돼 1877년 만국우편연합 가맹국이 됐고, 중국에서도 1872년 상해 해관에서 우편취급을 시작하고 1878년 해관 우표가 발행되면서 외국과의 우편업무가 시작됐다. 

1884년 12월 4일에 발발한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남에 따라 우정총국은 12월 9일 폐쇄됐다. 이후 10여 년이 지나 1895년 우체사가 설치될 때까지 10년 동안 다시 옛날 방식의 통신 방법이 계속됐다. 인천과 서울 간 공식적인 근대 우편업무가 시작된 것은 1895년 7월 22일로, 한성에는 통신국 내에 한성우체사를 설치하고 인천에는 경동에 있던 이운사(利運社) 내에 인천우체사를 두어 두 지역에서 우편 업무를 동시에 시작했다. 1897년에는 우편업무에 필요한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해관의 수익금으로 우무학당(郵務學堂)을 세웠고  1900년 1월 1일 만국우편연합(UPU)에 가입하면서 기구도 점차 확대해 갔다. 그간에는 서구 유럽 등지에 온 상인이나 선교사들이 고국에 편지를 보낼 때에는 국제우편 업무를 수행 중인 일본이나 중국 우편제도를 이용해야만 했었다. 

인천이 개항되고 일본조계가 설치된 후, 일본인들은 본국과 통신을 위해 1884년 4월 영사관내에 ‘우편국’을 설치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인천우편국은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우편사무까지 관장했는데, 그 당시는 그것이 비록 불법이긴 했지만 근대식 우편 업무를 실시하기 전이어서 시비를 가리기도 어려웠다. 일본의 통신기관은 점차 늘어나서 1894년까지 국내에 있는 일본우편국 수는 29개로 확장되기까지 했다.

조선정부는 지속적으로 일본우편국 철폐를 요구했으나 오히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4월 한일통신기관협정 체결을 강요함으로써 조선의 통신기관을 탈취했다. 강제합병 당시 한성우체사 직원 전체가 총사직하는 우국충정도 있었지만 무위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우체사’의 명칭도 일본식인 ‘우편국’으로 바꾸었고 일본의 우편국에서 취급하고 있는 각종 업무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담당했던 기존 통신 업무 이외에 새롭게 송금 업무와 예금 업무인 우편저금을 실시했다. 전략적으로 중요하고 실리도 컸기 때문이었는데 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 체신국은 우편저금을 전비(戰費) 조달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일본인 인천우편국은 업무 증가에 따라 1896년 12월 영사관 구내 동남쪽으로 신축 이전한 후, 또다시 1923년 12월 10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새 청사를 준공했다. 행정관청 치고는 웅대한 규모였는데 당시 우체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1949년 8월 ‘인천우체국’으로 개칭됐다. 우정(郵政) 주권을 빼앗기기 전 조선 전역에 설치돼 있던 우체사(郵遞司)를 계승하고자 한 것이다.  

인천우체국은 한국전쟁 때 일부가 파손돼 1957년 복구공사를 마쳤고 이후 지속적으로 관리돼 왔다. 건물이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쇠락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겠지만, 방치가 오래 지속되면 노후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우체 업무야 새 건물로 옮겨서 진행할 수 있겠지만 근 100년을 이어온 공간적 역할과 남겨진 이야기들은 그 어디에서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런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장소로 거듭 환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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