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실 인천로컬푸드생산자협동조합 이사장
권순실 인천로컬푸드생산자협동조합 이사장

사무실이 주안역 근처에 있어 버스에 내려 주안역 앞 광장을 지나게 된다. 갑자기 찾아온 혹한에도 노숙인들은 더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 추위를 피해갈 공간이 없을까? 마음이 답답해진다.

수요일마다 오던 밥차로 광장에서 식사하시던 수백 명의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 지는 오래 전이다. 그 자리에는 코로나 선별검사소 천막이 며칠 전 설치됐고 하루 종일 야외에서 검사하느라 언 발을 동동거리는 검사요원들의 안쓰러운 모습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은 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이 사태를 해결할 백신에 온 기대를 걸고 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우리는 백신 없는 겨울을 보내야 한다.

코로나 발생 초기 슈퍼 매대가 다 동이 나는 외국 사례를 보면서 식료품 품귀 문제를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사례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유통망이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식량 선진국인 것은 아니다.

식량의 생산기반인 농지는 매년 서울 면적의 ¼씩 줄어들고 있고 농사를 책임지는 농업인구는 2000년 230만 명에서 2018년 13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4%의 농업인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인천의 농촌 인구 고령화율은 44.7%로 전체 인구 고령화율 14.3%의 3배가 넘는다. 60세 이상 농가 인구비율이 58.3%로 농업을 이어갈 후계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장마 기간이 54일에 이를 정도로 기후 변화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지만 기후위기는 곧바로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로 작물 수확량은 10년마다 2%씩 감소가 예상되지만 식량 수요는 10년마다 14% 증가한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대표적인 식량 수출국인 러시아는 밀수출을 제한하고 비축을 확대하고 있다. 쌀 이외 주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이 2018년 기준 21.7%에 불과하다. 안전성 논란이 있는 GMO곡물의 수입은 2019년 기준 총 1천164만t으로 세계 상위권이다.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높을수록 식량 수급의 불안정 요인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지구촌 77억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기보다는 식량공급 불균형과 사용처의 왜곡에 더 문제가 있다고 한다. 지구촌 77억 인구 중 10억 가까운 인구가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나라 먹거리 취약 인구도 약 5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이계임, 2017).  물론 먹거리 부족으로만 건강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총체적으로 불균형한 먹거리가 건강을 위협한다. 15억 가까운 인구는 비만과 과체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아와 비만이 건강을 위협하는 역설, 세계적으로 1천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먹거리 요인으로 사망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두 번째 먹거리의 역설은 식량의 왜곡된 사용이다. 77억 인구가 먹을 식량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육류소비로 인해 소나 돼지, 닭 등 가축의 사료로 쓰이고 있다.

소고기 1㎏을 생산할 때 곡물 7~8㎏이 사용된다고 한다. 사람이 직접 곡물을 섭취할 때보다 휠씬 비효율적인 방식인 것이다. 게다가 석유의 한정된 매장량과 높은 유가로 인해 이를 대체할 바이오 연료 생산이 점점 늘고 있다. 콩이나 옥수수, 사탕수수 같은 곡물들이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먹거리의 역설은 세계적으로 생산된 식량의 ⅓이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물 소비의 ¼가량이 버려지는 식품 생산에 사용된 것이고 버려지는 식품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은 연간 490억t에 달한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식량 부족으로 굶주려 죽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는 지구에 돌이키기 어려운 환경적 부하를 주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제대로 된 영양 섭취를 하지 못해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혹은 고립된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를 잘못된 식생활로 풀면서 건강을 해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전 지구적 감염병이 지구촌 환경 악화를 배경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그 위기의 탈출 해법 역시 좀 더 근본적이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 밥상에서부터 돌파구를 찾아보면 어떨까? 먹거리 주권을 위협받고 있는 우리 지구촌 이웃을 함께 생각하면서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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