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전기차 탑재 배터리 시장의 한·중·일 삼국 경쟁은 가히 초접전 양상이다. 올 9월까지 탑재한 배터리 제조사 3강은 중국의 CATL(점유율 23.1%), 한국의 LG화학(점유율 22.8%), 일본의 파나소닉(점유율 21.2%). 물론 중국과 일본의 2개 사 성장률은 마이너스 11~14%이고 한국의 LG화학은 플러스 116%로 전년에 비해 괄목할 상승곡선을 그린 까닭이다. 그동안 막대한 투자로 ‘돈 먹는 하마’로도 불렸던 배터리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이익을 내는 본격적인 단계로 들어선 만큼 향후 전망까지 밝다. 

마치 군소 실력자들이 저마다 천하를 노리며 온갖 노력을 다하다가 차츰 정리돼 유력 군벌로 압축되며 삼국의 무대 전반기 상황과 흡사하다. 더구나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한국의 배터리 산업(K배터리)은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고 보면 장밋빛 미래가 점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 암초를 만날지 모른다. 마치 관도대전이 있기까지 최강자로 군림하며 단연 선두주자였던 원소가 군사력이나 보급 능력에서 1/5 수준이던 조조에게 대패해 몰락했듯이 현재 순위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실제로 LG화학은 지난 3월 이후 8월까지 세계 1위였으나 9월에 중국의 CATL에 선두를 내줬고 총합산에서도 밀렸다. 전 세계 전기차의 절반가량이 중국 내에서 운행 중이며 자국산 배터리 보조금 정책이라는 날개까지 붙어 유럽으로 공급처를 확대하고 있으며, 전기차 시장의 ‘절대 강자’ 테슬라와 협업해 온 일본의 파나소닉은 그 기반이 확고하다는 것이 중론. 여기에 최근 불거진 전기차 화재 사고 문제가 변수다. 

LG에너지솔루션은 화재로 리콜을 결정한 현대차 코나EV, 미국 GM볼트 등에 자사 배터리가 탑재돼 있다. 사고가 잇따를 경우 글로벌 시장의 미래가 위협 받을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성장통’이란 시각도 있으나 원인 규명과 기술 개발이 더딜 경우에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환경 산업으로 각광받으면서 배터리 제조사는 물론 웬만한 대기업들이 소재·부품·원재료 사업에 뛰어들고 있기에 앞으로 5년 이내에 거의 200조 원에 달하는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훨씬 더 가능성이 있다. 

전기차 이외에도 모빌리티(이동수단)와 무선 가전에 배터리가 탑재되는 것 역시 가능성을 더 높인다. 따라서 한·중·일의 ‘배터리 삼국지 경쟁’은 이미 중반전을 넘어 결정적인 단계에 진입했다는 쪽에 방점을 두고 보다 적극적인 육성·지원책을 써야 할 것이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사이에 벌어진 국제무역위원회(ITC)와 국내외 법정에서의 소송전을 시급히 해결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내년 2월로 최종 결정이 미뤄진 ITC 영업 비밀 침해 소송에 대해서 양쪽 모두 경영 불확실성 해소 차원의 협상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삼국지의 지혜와 교훈’ 가운데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이 강자와 싸우기 위해서 약한 쪽이 힘을 합치는 연합 방식이다. 분명 한국의 입지는 약한 쪽이 아니지만 우리의 주력은 LG와 SK, 삼성 SDI로 나누어져 있고, 중국·일본에 비해 열세로 보는 전문가도 많은 만큼 서로의 상처내기는 조속히 마무리하고 되레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삼국지 무대의 대표적인 3개 전쟁을 흔히 ‘관도전쟁’, ‘적벽싸움’, ‘이릉전투’ 셋으로 본다. 

이 3대 전쟁에서 나타난 결과는 싸우기 직전에 모든 면에서 월등 우세했던 쪽이 패배자가 됐다는 점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상대에 대해 치밀한 전략이 부재했거나, 자만에 빠져 허점을 드러냈기 때문인데 이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상대의 공세를 예측한 주요 참모들의 지적이 간과됐고 결국 패배의 구렁텅이로 스스로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자국산 배터리 보조금 정책을 계속 확대하거나, 일본의 테슬라와 협업이 더욱 강화되는 상황을 예방하고 우리의 자국 내 기업 간 협력과 상호 존중의 노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그나마 코로나19 이후 가장 희망 섞인 K배터리의 2020년 업적이 위태로울 수 있기에 ‘배터리 삼국지’의 최종 승자가 되는 날까지 분발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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