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연구교수
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연구교수

그야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한 쥐의 해였던 경자(庚子)년이 이제 곧 저물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쥐인 경자가 가져온 독기(毒氣)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다가오는 신축(辛丑)년까지도 이어질 전망이다. 

코로나 이전 가장 크게 인류의 삶 전체에 영향을 주고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던 독기의 공격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누구나 중세시대 ‘흑사병’이라고 이름 붙여진 ‘페스트균’을 많이 거론할 것이다. 잘 알려졌듯이 페스트균은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매개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직접적인 운송 수단은 바로 쥐였다. 코로나19의 운송 수단은 같은 설치류가 아닌 박쥐목이지만 어떻든 동양에선 ‘쥐’의 명칭을 붙인 박쥐라고 불린다.

이번에 다가오는 해는 ‘신축(辛丑)년’이다. 이를 풀어보자면, 12지지(地支) 중에서 축(丑)은 소이고 천간(天干)인 ‘신(辛)’은 오행 중에서 금(金)이기에 ‘흰 소’에 해당하는 해이다. 지지(地支)의 ‘소(丑)’는 오행으로는 중(中)을 차지하는 ‘토(土)’로서 오행 중에서 서로 극(剋) 하는 것들을 생(生) 하게 해준다. 

쉽게 말하면 전염병에 있어선 백신(Vaccine)이나 치료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위치다. 그러고 보면 천간(天干)의 ‘신(辛)’도 오방색으로 ‘백신(白辛)’인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최초 백신은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에 의해 천연두(天然痘) 치료제로 제안된 ‘우두(牛痘)’였다. 

따라서 ‘백신(Vaccine)’이란 단어 자체도 라틴어 소(牛)를 뜻하는 ‘바카(vacca)’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최초의 백신인 우두는 천연두와 같은 항원결정부위를 가지지만, 천연두와는 다르게 인간에게 독기가 없기에 인간에게 우두를 주사함으로써 인간이 천연두에 대한 ‘항체’를 갖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소(牛)가 가지고 있는 중화(中和)적인 토(土)의 기운을 얻어 하루빨리 코로나19 치료제가 출시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천간 백신(白辛)의 기운을 얻어 소가 처음 우리에게 우두(牛痘)인 안전한 백신을 안겨 줬듯이, 신축(辛丑)년에는 아무쪼록 부작용 없는 안전한 백신을 세계인 모두가 접종받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견강부회한 일인지는 모르나 우리의 ‘유독(有毒)한’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새해 소망을 담아 아전인수식 의미 부여를 해봤다. 

말이 나온 김에 이번에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소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기후변화의 위기 탓에 올해에는 유난히도 길고 길었던 장마와 폭우로 홍수가 곳곳에서 자주 그리고 크게 발생해 고통을 많이 겪었다. 이 또한 인간들의 업보이다. 

어쨌거나 방송을 통해 불어난 물에 빠져 떠내려가던 소가 지붕 위로 올라가 있다가 구조되거나 강으로 떠내려간 소가 수십 ㎞ 떨어진 다른 마을에서 발견되는 장면을 보면서 생존본능이 대단하다 싶었고 자못 감동적이었다. 평소 두 배나 헤엄을 잘 치는 말의 경우는 급류에서는 발버둥 치다가 힘을 다 소모하고 빠져 죽는다고 한다. 그러나 소는 10m 떠내려가는 와중에 1m 정도는 강가로, 또 10m 떠내려가면서 1m 정도를 조금씩 강가로 향한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떠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소는 강가 근처에 와있게 된다. 

방송에 나오는 소들이 생존한 이유이다. 말은 자신의 헤엄 능력만 믿고 거센 물살을 거슬리려고만 하다 힘이 빠져 익사하고, 헤엄이 느린 소는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겨 조금씩 강가로 나와 목숨을 건지는 모습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라는 ‘우생마사(牛生馬死)’이다. 

살아가다 보면 일이 막힘없이 술술 풀릴 때도 있다. 그러다 아무리 애써도 일이 꼬일 때가 있다. 잘못을 저질러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잘못과는 무관하게 억울한 책임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이럴 때 자신의 능력이나 생각에만 집착해 단번에 뒤집으려고 애쓰지 말고 우직한 소처럼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겨 지켜보며 상황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느릿느릿 소의 걸음이지만 우직하게 걷다 보면 만 리를 간다는 ‘우보만리(牛步萬里)’와 같은 마음이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한다. 

삶의 긴 여정에서 속도보다는 아무래도 방향이 중요하다. 2021년 신축년에는 모두가 여유로운 마음으로 소처럼 현재의 환란을 헤쳐갈 지혜를 곰곰이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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