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박진호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내항 재개발은 해양수산부, 한국토지주택공사, 인천시, 인천항만공사 등이 공동으로 추진하며 수조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내항을 해양관광 중심지로 개발하고자 하며, 업무, 주거, 문화, 관광, 산업 등을 포함하는 하나의 뉴타운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업 주체가 많다 보니 사업이 산으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더 심각한 사실은 그동안 관련 주체들이 낸 사업추진 계획안이나 현상공모안 등에는 인천의 미래나 창의적 변화, 그리고 정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깊은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며, 번지레해 보이는 투시도에 어디에선가 본 듯한 내용이 거의 짜깁기 수준으로 가득 차 있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내항에 주거단지 혹은 아파트가 웬 말인가? 창고나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 후, 화려한 이름을 붙인 사업을 산업 유산을 활용한 재생 사업이라 명명할 것인가? 어떤 산업이 혁신이라는 이름하에 폐기된 산업 유산 위에 조성될까? 

의문 투성이다. 내항은 인천 근대 역사를 품고 있는 귀중한 산업유산이다. 주변이 친수공간이라는 점 이외에도 관광자원, 상업공간이 풍부하고, 주변은 원도심으로 둘러싸여 인천의 지역적 정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핵심적 공간이다. 항구 주변의 버려진 땅을 재개발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 도시의 핵심적 가치로 오랜 기간 해당 시민들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 점에서 호주 시드니 항구의 한쪽 끝 폐야적장에 지은 오페라 하우스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국제현상 공모전을 통해 덴마크 건축가 요른 웃존(Jørn Utzon)의 작품이 최종 당선됐고, 과도한 예산 증감과 공사기간 연장 등의 우여곡절 끝에 14년 만에 완공됐다. 한 해 방문객이 천만에 이르는 이곳은 한 번도 가보지 않고서도 누구에게나 시드니 하면 연상되는 곳이 오페라하우스라 할 정도로 도시의 아이콘처럼 존재한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항구 주변을 걷다 보면 여유와 낭만이 넘쳐나며, 미술관, 박물관, 쇼핑, 컨벤션센터 등이 이어져 하나의 문화중심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60여 년 전 시작된 이 사업이 지금까지 세계인들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 세수가 거의 12조에 이르는 인천시가 수년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공사비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인천 원도심 시민들에게 이러한 공간은 너무 사치인가? 

내항 사업은 인천시가 주도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끌어 나갔으면 한다. 해양수산부는 국내 모든 항만을 관할하므로, 인천만의 정체성을 고민한 계획안을 제안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도 비슷하다. 개발 사업적 관점으로만 바라봐서는 내항의 미래를 절대 담보할 수 없다. 싸게 빨리 보여주기식 공공 개발이 아니라 300만 인천시민의 절대적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며 감동과 자긍심을 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 청사진을 제시하고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항 재개발 계획이 암울해 보이는 이유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를 지향한다는 인천에서 그 동안 계획되고 실행되고 있는 도시재생이나 도시계획 사업들이 제3세계 도시계획의 아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혜안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통찰력이나 영감, 창의적 생각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렵다. 

제안서나 공모안들에는 신선한 바람을 이끌 수 있는 내용은 없고, 매일 지겹도록 듣는 ‘새로운’, ‘글로벌’, ‘선도적’, ‘혁신적인’ 이라는 단어에 스마트 도시니, 혁신 도시니 하는 무의미한 용어로 도배돼 있다. 오히려 도시에 대한 망상적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포장만 잘된 계획안에서 혁신을 기대한다는 건 망상이다. 과대 선전 문구들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수법, 시민들의 냉철한 사고로 판단되고 조명돼야 한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방식은 인천이 가진 인적자원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지자체 발주 프로젝트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전문가들이나, 떠벌이 현학적 지식인들에 의존하지 말고, 지역 혁신을 주도할 인재를 찾고 임용해 전담조직을 만들고 뿌리부터 차근차근 바꿔 나가야 한다. 풍부한 식견과 지식을 가진 ‘찐’지식인들을 끊임없이 찾고 인천으로 유입해야 한다. 

또한 구체적 실천과 사업의 성공을 위한 과감한 투자와 더불어 정치적, 행정적 결단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엄청난 세수가 들어갈 내항 재개발이 기껏, 지금 막 시작되는 동인천역 북광장 주변 재개발처럼 새로운 구심점으로서 어떠한 생산적, 혁신적 대안 없이 기존 체제나 틀에 박힌 재개발로 추진된다면 그 결과는 명명백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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