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 (사)인천시 서구발전협의회회장
김용식 (사)인천시 서구발전협의회회장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돌아본다면 사회가 정립돼 있지 않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때에 가장 뛰어난 리더십은 아마도 직관과 카리스마로 대표되는 리더십이 아닐까 한다. 카리스마는 그리스어 Kharisma에서 찾을 수 있는데 신의 축복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기독교에서는 초능력이라는 뜻으로 변했고 이를 막스 베버가 사회과학 개념으로 확대하면서 보통 인간과 다른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재능으로 정립됐다. 

사회체제가 변화하면서 구성원으로부터 자유에 대한 요구가 분출될 때 이들 구성원의 권리를 제한하면서 국가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에 집중하게 하는 리더십이 바로 카리스마였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민도가 높아지면서 마냥 강한 리더십만으로는 사회가 유지되지 못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의 진시황이 대표적인 카리스마를 구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사회제도적인 측면에서 괄목상대할 만한 발전을 이뤄냈지만 불과 2대를 넘지 못하고 멸망했다. 이어 한고조 유방이 법을 간소화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며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진을 대체한 역사가 보여주듯이 강함과 부드러움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서로 교차하면서 이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고 할 수 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는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주제로 하는 역설의 철학이 있다. 풀이나 나무가 살아 있을 때는 취약하지만 죽으면 딱딱하게 말라버리고 사람도 살아 있을 때는 근육이 유연하고 신축성이 있지만 죽으면 굳어버림을 지적하면서 강고함은 죽음의 이치요 유약함은 삶의 이치라는 물에 대한 논리를 펴고 있다. 물은 흐르고 멈추는 것을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다. 태산을 만나면 돌아가고 호수를 만나면 쉬어 간다. 

또한 물은 높은 데로 흐르는 법이 없고 낮은 곳으로만 흐르며 남들이 싫어하는 구석진 곳으로 흘러 든다며 한마디로 물은 겸손과 겸양의 표본이라고 했다. 그러나 물의 유약함과 부드러움을 얕잡아 보다 큰코 다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고 있다. 제왕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정관정요(貞觀政要)’의 정체(政體)편에 실린 당 태종과 신하들 간 대화에는 정치 지도자라면 오싹할 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들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역시 배를 뒤집기도 한다(水能載舟 亦能覆舟)." 

지금 돌아가는 국내 상황을 보자면 한마디로 정쟁의 연속이다. 국민들이야 경제적 어려움으로 죽든 말든 정적에게 재기 불능의 치명타를 입힐 수 있을지를 궁리하느라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지경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비정규직 혹은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들의 일자리와 주머니 사정은 더 나빠졌다. 전세를 사는 서민들의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 개정했다는 주택임대차 3법으로 전세 수요자들은 오히려 전셋집을 찾을 수도 없고 급등하는 전셋값을 감당하기도 어려워졌다. 집값을 잡아서 무주택자들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주겠다며 펼친 부동산 규제정책은 내 집 마련의 기회커녕 그 꿈조차 허공으로 날아가고야 말았다. 

코로나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국민들의 삶을 통제한 결과로 대한민국은 무엇을 얻었는지 코로나19 확진자가 1천 명을 넘나드는 요즘 허탈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 여의 짧지 않은 동안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밀고 당기는 싸움을 계속해 왔고 국민들의 피로는 누적돼 왔다. 국민의 삶에 어떤 편익을 가져다 줄지조차 알 수 없는 공수처법을 두고 정치권은 몸살을 앓아 왔다. 국민들 화나게 하지 마라. 국민을 물로 보아라. 

하지만 항시 배를 띄우는 물로만 보지는 말라. 언제든지 배를 뒤집을 수 있는 물로 본다면 대한민국의 정치와 행정이 순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 물과 같은 존재가 돼 만물을 이롭게 해주고 자신을 내세우거나 잘났다고 서로 다투려 하지 않고 순리대로 흐르며 남들이 싫어하는 구석진 곳조차 흐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더 신명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 유연함과 부드러움이 태산을 마주한 듯한 갑갑한 처지의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