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골프를 하다가 동반자의 퍼팅이 짧으면 "혹시 공직에 계시냐"고 묻는다. 동반자의 직업을 모를 리 없지만 플레이 성향을 ‘공직자’라는 범주에 포함시켜 상대의 ‘멘붕’(멘탈 붕괴)을 노린다.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이 또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중 하나일 게다. 공직자는 소심하다거나, 안정지향적이라거나, 좀처럼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이 쌓여 이 같은 얘기가 떠돌겠지만 정설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적어도 공직자들이 갖는 습성 중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장면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다소 성격은 다르지만 공직자들의 사고체계를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그림이 해마다 연초에 등장한다. 정치인이나 기관·단체장들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앞에서 희망찬 도약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대개 새해 첫 일정을 현충탑 참배로 잡기 일쑤다. 그런데 참배하는 날짜가 나뉜다는 점은 흥미롭다. 참배 시점은 공직자와 정치인을 판별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를테면 올해 신축년의 경우 현충탑 참배를 1일에 하면 정치인, 4일에 하면 공직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정치인은 현충탑 참배를 숫자(날짜)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치행위로 이해하지만, 공직자는 업무 개시일에 무게를 두는 행정행위로 받아들인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올해 용인시가 현충탑 참배 시점을 변경했다는 점이다. 당초 시는 관성적으로 늘 그래왔듯 시무식이 예정된 1월 4일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현충탑 참배 일정을 잡았다가 연말에 새해 첫날인 1일로 돌연 변경했다. SNS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여타 대다수 기관·단체장들이 4일 현충탑 참배를 한 것과는 대조적인 광경이다. 변경 이유야 들은 바가 있지만 중요치 않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공직자 사고’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오십보백보’,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식 사고의 연장선에서 ‘1일에 하나 4일에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십보와 백보는 오십보의 격차가 있고, 청명과 한식은 하루의 간극이 있고, 1일과 4일은 새해 첫날과 넷째 날이라는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스럽다’보다는 ‘∼답다’를 추구하는 신축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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