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도 첫 번째 나눔스토리의 주인공은 인천시 중구에서 60여 년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차영신 씨다. 그는 연안부두 어시장에 위치한 해룡상회의 대표이자 대한적십자사에 꾸준히 후원을 이어나가고 있는 후원자이기도 하다.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차 대표는 한국전쟁 때 피난 와 인천에 정착했다. 월남민으로서 정착하기까지 많은 고난이 있었으나 굳은 신념으로 사회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대한민국 현대인물사 서적에 소개됐으며, 인천시장에게서 제45회 어버이날을 맞아 장한 어버이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자식들을 인성학교에 보내 기독교 이념을 공부하도록 했어요. 바른 인성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라고 말하는 차 대표의 말에서 남다른 자녀교육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낯선 남한 땅이었지만 손이 귀한 집이라 여섯 남매를 낳아 힘들게 길렀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여러 일을 마다하지 않고 했다. 친구의 소개를 받아 해군바자회에 젓갈을 납품하게 된 것을 계기로 전국 대기업과 호텔, 국회를 상대로 젓갈사업을 진행했다. 동일 업종 종사자 중 여자는 혼자였기에 많은 텃세를 당했으나 굴하지 않고 사업을 일구며 자식들을 키워 냈다. 어려운 사정에도 주변에서 요청하는 도움은 거절하는 법이 없고, 인천의 대표적 사회복지시설인 인천영락원과 양로원 등지에 물심양면 참 많이 베풀었다며 동석한 지인들이 얘기하자 "에이, 그런 것 없다"며 한사코 부인했다.

최근 인연의 무서움을 느꼈다는 차 대표는 옛 인연을 우연히 만났던 일화를 털어놓았다. "우연히 동인천에서 전기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예전에 후원하던 선감도의 청소년 형무소에 수감돼 있었던 소년이었어요. 해당 형무소에 연필이나 노트 등 학용품을 구매해 갖다 주기도 했던 아줌마가 이렇게 늙었다고 얘기했죠." 형무소에서 힘들게 생활하던 소년이 이렇게 성장했구나 감회가 새로웠다고 한다. 

차 대표가 걸어온 길과 삶의 방식을 알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의 강인한 성품과 행동력,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 옛날부터 자녀교육에 있어 여성과 남성을 구별하지 않고 공평하고 동등하게 길렀다는 부분에서 차 대표의 깨어 있는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차 대표는 남편이 딸아이는 고등학교까지만 보내고 남자아이들만 대학에 보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능력 있는 아이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답했다. 

큰아들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잃게 됐다는 차 대표는 죽은 아들이 좋아하던 예술활동을 지속해 왔다. 평화통일 서예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빼어난 서예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아들이 소중히 여기던 서예도구를 대신 사용하며 실력을 연마했다. 차 대표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를 통해 정기후원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라며 후원액을 증액하기도 했다. "죄 짓고 살면 안 된다. 내가 마음이 편안하고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 떳떳하도록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차 대표에게서 분명한 인생철학이 느껴졌다. 

<적십자 사랑나눔 회비 모금캠페인 참여자>

 황인성 1억 원, 이효상 3천만 원, 대한전문건설협회 인천광역시회 1천만 원, 송도슈퍼스타즈77 1천만 원, 황규철 600만 원, 하성의 200만 원, 항공안전기술원 200만 원, 안광열 100만 원, ㈜금강오토텍 100만 원, 임은자 100만 원, 박정미 100만 원, 인천시교육청 100만 원, 신흥교통 90만 원, 인천단봉초등학교 70만 원, 이선희 30만 원 ,신정희 20만 원, 김동화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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