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에게 여러 여인이 있었고, 위왕(魏王)에 오른 후에 왕비가 되고, 훗날 태후가 된 변부인(卞婦人)이 본처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조조의 첫 결혼 상대자는 정부인(丁婦人)이었다.

그런데 완성 공략전에서 장수의 숙모 추부인을 탐하다가 가후의 꾀에 걸려 도망치는 조조를 구하고 대신 죽은 이는 큰아들 조앙이었다. 정부인은 자신의 소생은 아니지만 조앙을 끔찍이 아꼈다.

하지만 조앙이 죽고 조조가 돌아오자 "아비란 자가 자식을 대신 죽이고 돌아오다니 용서할 수 없다"라고는 친정으로 가 버렸다.

그녀는 또렷한 주관을 가진 여성으로 설령 조조가 천하를 손아귀에 넣을지라도 자식을 죽인 일에 대해 용서할 수 없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물론 난세에 누구나 겪는 아픔을 삭일 줄 몰랐다고 험담할 사람도 있을 터.

하지만 손문이 송경령과 결혼하기 전에 부인 진수분이 있었고 그녀는 손문의 혁명동지 역할을 다했으나 그가 총통이 되자 미련없이 떠났다. 이 여중호걸은 "내 뜻이 이루어졌으나 부귀공명은 뜬구름과 같다"는 말을 남겼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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