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자들끼리 함께 작업을 하면 최상의 결과물이 나올 것 같지만 실상은 협업 자체를 보기 어렵다. 양자 모두 자신의 스타일이 워낙 확고하다 보니 융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어떨까?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남녀 배우를 단 한 명씩만 선정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성, 흥행성, 연기력 모두에서 높은 성취를 보인 배우들이 있다. 미국 영화연구소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배우는 바로 험프리 보가트와 캐서린 햅번이다. 이름만으로도 이견 없이 수긍이 가는 두 사람이다. 이 최고의 배우들이 1951년에 뭉친 한 편의 영화가 대중을 즐겁게 한다. 영화 ‘아프리카의 여왕’은 연기의 신(神)인 두 배우가 펼치는 환상의 콤비 플레이로 어드벤처 스토리의 진수를 보여 준다.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목사인 오빠를 따라 동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서 생활하는 로즈는 마음을 다해 선교활동 중이다. 하지만 평화는 길지 않았다. 독일군이 들어와 마을은 쑥대밭이 됐고, 오빠도 세상을 등진다. 홀로 남은 로즈는 가끔 마을에 필요한 물품을 배달하던 배의 선장인 올넛의 도움으로 화물선에 오른다. 

게으르고 낙천적인 올넛은 안전한 곳에 배를 정박한 후 전쟁을 피해 생활할 것을 권하지만 로즈는 달랐다. 조신하고 단정한 그녀였지만 오빠마저 잃은 마당에 가만히 두 손 놓고 독일 군의 횡포를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로즈는 올넛을 설득해 독일 증기선 루이자 호를 격침할 사제 폭발물을 제조한다. 

어뢰를 완성한 두 사람은 루이자 호를 향한 항해를 시작하는데, 그 여정이 파란만장하다. 크고 작은 폭포와 거친 협곡, 악어 떼의 등장과 수십만 모기의 습격 등 극한 상황을 함께 이겨 낸 두 사람은 동지애를 넘어 사랑을 느낀다. 고비의 순간마다 로즈의 재치 있는 제안과 추진력, 올넛의 손재주와 노련미로 헤쳐 갈 수 있었지만 늪에 빠진 배를 구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거머리가 득실대는 곳에 들어가 배를 밀고 끌어야 하는 극한 상황과 마주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크게 지치고, 하늘을 보며 마지막 기도를 올린다. 독일 증기선을 격침시킬 큰 뜻에서 시작된 이들의 모험은 이제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아프리카의 여왕’은 전설적인 두 배우의 중년 로맨스와 잠깐의 한눈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흥미로운 모험으로 꽉 채워진 작품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만큼이나 배우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아프리카의 여왕’이라는 배의 이름은 마치 캐서린 햅번을 지칭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화 초반에는 기품 있지만 까다로운 여왕처럼 고고한 이미지로 시작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여장부의 모습까지 당찬 여성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줬다. 

올넛 선장 역의 험프리 보가트는 그간 우수에 찬 탐정 역의 선구자였던 배우가 맞는지 눈을 의심할 만큼 엉망으로 망가진 모습이 신선하다. 베테랑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은 열정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 ‘아프리카의 여왕’은 반드시 봐야 될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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