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락
F. 스콧 피츠제럴드 / 녹색광선 / 1만5천750원

살면서 아무것도 잃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결국은 누구나 젊음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사랑, 건강, 가족, 부, 명예와 같은 가치들이 행복이나 성취감을 동반하며 삶에 머물렀다가 사라지곤 한다. 피츠제럴드는 일찌감치 인생의 이러한 속성을 간파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문장으로 표현해 낸 작가였다. 그가 써 내려간 수많은 단편소설은 이러한 그의 세계관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단편집 「행복의 나락」에 수록된 다섯 작품들은 ‘퇴색되거나 잃어버린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피츠제럴드는 삶의 표면을 멋지게 그린다는 편견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가 삶의 표면을 눈부시게 그린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그의 전부는 아니다. 환상은 환멸과 샴쌍둥이이기 때문이다. 환상을 좇는 자는 반드시 환멸에 머리를 박게 돼 있다. 피츠제럴드는 찬연하게 빛나는 삶의 표면 아래 처절한 환멸의 구렁텅이도 기가 막히도록 잘 그리고 있다.

 서른다섯 살에서 예순다섯 살까지의 세월은 설명할 필요없는 혼란스러운 회전목마처럼 수동적으로 사는 멀린 앞을 스쳐 돌아갔다. 회전목마 같다는 건 적당한 비유다. 엇박자로 달리거나 숨 가쁘게 삐거덕거리는 말들이 돌아가고, 애초에는 파스텔 컬러였으나 이제는 칙칙한 회색과 갈색으로 바랜 모습이 곤혹스러우면서 참을 수 없이 어지러운 회전목마다.

 처음에는 젊음의 무수한 즐길거리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수많은 피난처가 있는 앞자리에서 물러나서는, 피난처가 훨씬 줄어든 줄로 후퇴하는 것이다. 여러 야망이 사라지며 한 가지 야망만이 남게 되고, 여러 오락거리가 한 가지 오락거리로 줄고, 많은 친구들이 소수의 친구로 줄어들다가 그들에게도 무감각해진다.

 「행복의 나락」에 실린 단편들은 환상과 환멸이라는 샴쌍둥이를 잘 그리고 있다. 주로 아름다운 여인을 좇는 남자의 환상이지만, 아름다운 남성을 좇는 여자의 환상(새로 돋은 잎) 역시 다루고 있다. 불과 세 시간에 걸친 환상과 환멸의 변주(비행기 환승 세 시간 전에)가 있는가 하면, 수십 년에 걸쳐 환상이 환멸로 변하는 경험(겨울 꿈과 오, 붉은 머리 마녀)도 실려 있다. 

 환상으로 시작해 환멸로 끝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서 환상에 환멸이 따라오는 전개는 시간 순이지만, 우리 삶의 의미는 시간 순과 무관하지 않은가. 피츠제럴드는 환멸을 겪으면서도 환상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인물들을 창조해 냈고, 그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요
장현숙 / 행복에너지 / 1만5천300원

내가 낳았지만 때로는 누구보다 어려운 내 아이, 어떻게 이해하고 지도해야 할까? 청소년상담사이자 코칭심리 전문가로서 아신대 평생교육원 치유심리학 강사 등을 거쳐 서울 강동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부모교육지도사로 활동 중인 동시에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함세’ 대표를 맡고 있는 장현숙 강사는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요」를 통해 부모 입장에선 알기 어려운 청소년 자녀들의 심리와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을 조언하면서 올바른 자녀 교육의 길잡이가 돼 준다.

이 책이 말하는 내 아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저자는 ‘내 아이는 나와 분리된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고, 아이에 대해 꼼꼼하되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바이올린의 현들이 너무 붙어 있으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듯이 부모와 자녀 관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 역시 그러했듯이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용기 있고 지혜로우며, 자녀를 믿고 기다려 준다면 믿어 준 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어른이 될 것이라는 게 궁극적으로 저자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 돌베개 / 1만7천100원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가 6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체험’을 넘나들며 보고 겪고 느낀 점들을 기록하는 방식을 유지하되, 그간 더해진 시간의 자취를 담아 전면 새로 고쳐 썼다. 초판 출간 당시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보완하고 축적된 사실을 되짚겠다던 약속을 지킨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은 2014년 7월 초 이후부터 2020년 12월까지 주목할 만한 사건을 불러내고, 인구·국민소득·소득분배 등 사회변화를 보여 주는 각종 통계자료를 활용해 보완했다. 특히 2019년 7월 4일 발표됐던 일본의 수출규제, 2016년 이후 확장된 미투운동·장애운동 등은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각기 절을 할애했다.

유시민이 개정증보판에 애정을 쏟은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거듭 불러와 지금 이곳에 연결시키려는 그의 시도를 ‘현재사(現在史)’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책에는 2014년 이후의 일들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그 과정에서 재발견한 대한민국 모습이 곳곳에 담겨 있다. 이를 확인하는 재미가 초판을 읽은 독자에게 가 닿기를 바라며, 다사다난했던 동시대 독자들에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유익한 안내서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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