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손자. 대를 이어온 가업이 이젠 어엿한 지역 명물이다. 강산이 변하고 하천과 들이 콘크리트 조형물로 뒤덮여도 그 시절 그 손맛은 비켜간 세월에 웃어 보인다.

그들이 이제 백년의 전통을 잇고자 한다. 바로 백년가게다.

세월의 무게만큼 깊게 스며든 맛을 ‘활자(活字)’로 남겨 본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코로나19라는 고뿔이 창궐하면서 그들에게 백년의 궤적은 아스라하다.

본보와 인천중소벤처기업청의 공동기획 ‘인천 노포(老鋪) 백년가게’는 매주 1회 연재로 그들의 모습을 그려 낼 예정이다. 백년가게들 힘내라.<편집자 주>

1946년(추정) 창업자 고(故) 박재황 옹이 국밥집을 연 지 75년 된 삼강설렁탕은 경인국철 동인천역과 배다리철로사거리 중간 참외전로에 위치해 있다.
1946년(추정) 창업자 고(故) 박재황 옹이 국밥집을 연 지 75년 된 삼강설렁탕은 경인국철 동인천역과 배다리철로사거리 중간 참외전로에 위치해 있다.

참외로 유명했던 청과물시장 ‘채미전’. 해방 이후 이곳 상인과 짐꾼들에게 찬 바람을 잊게 해 준 해장국이 있다. 담백하고 맑은 국물의 해장국과 정성 들여 담근 김치는 입소문을 타고 인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삼강설렁탕(삼강옥) 얘기다.

삼강설렁탕은 늘 한결같다. 아흔 살의 손님부터 백발이 다 된 손자 사장(3대째)까지 변함없다. 굳이 찾자면 이제 가업이 4대째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 사상 유례없는 고뿔(코로나19)에 유학길이 막힌 증손녀(4대)가 거들고 나선 것이다. 1946년(추정) 창업자 고(故) 박재황 옹이 국밥집을 연 지 75년 만이다.

삼강설렁탕은 경인국철 동인천역과 배다리철로사거리 중간 참외전로에 위치해 있다. 2대인 맏며느리 김주숙(83)씨는 "일제강점기 인천부에서 조성한 청과물시장 근처 허름한 가옥에 국밥집을 차리고 북한 개성 고향집 인근에 흐르던 개울인 삼강을 가게 이름으로 짓고 국밥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반백 년, 또 강산이 두 번 반 바뀐 세월의 무게만큼 이곳 국밥 한 그릇에는 깊은 맛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긴 세월만큼 어렵고 힘들어서 한때 가게 문을 닫을까 고민도 했다는 김 씨. 하지만 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는 찾아주는 단골이 있어서다.

김 씨는 "삼강설렁탕의 음식맛을 잊지 못해 찾아준 반가운 손님들,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손주의 손을 잡고 들러준 단골고객이 있었기 때문에 한결같이 가게를 열었다"고 말했다.

삼강설렁탕의 전성기는 1960~1980년대였다. 김 씨가 기존 메뉴를 없애고 국밥 등으로 전문화하면서 번창했다. 해장국·설렁탕·육개장 등 식사 메뉴를 만들고 불갈비·도가니무침·수육 등은 안주 메뉴로 내놨다. 장사가 잘 될 때는 새벽 4시에 문을 열어 아침 7시에 재료가 다 떨어지기도 했다.

영원할 것 같은 그 시절은 1980년대 중반부터 저물어 갔다. 채미전 대신 불렸던 ‘동인천 깡시장’이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부터다.

3대째 이어오고 있는 박용수(60)씨는 "인근에 없어진 은행만 7곳이다. 채미전 상인들이 떠나면서 아침 손님은 눈에 띄게 줄었고, 인근 관공서와 학교가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동인천 상권이 완전히 침체돼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은 평소보다 40%가량 줄었다.

그런데 박 씨에게는 코로나19로 줄어든 매출보다 더 큰 아쉬움이 있다. 숱한 어려움으로 신도시나 번화한 곳으로 이전하자는 유혹을 뿌리치며 지켜온 ‘노포(老鋪) 삼강설렁탕’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어서다. 인천시의 ‘이어가게’가 대표적이다. 이어가게는 시가 지역 특색을 담은 노포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골목상권 활성화사업이다. 하지만 삼강설렁탕은 당시 이어가게에 선정되지 않았다.

박 씨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 뿌리를 두고 장인정신으로 3대째를 이어가고 있는 가업"이라며 "시민의 배고픔과 애환을 담고 있는 삼강설렁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설렁탕 9천 원 ▶도가니탕 2만2천 원 ▶꼬리곰탕 1만9천 원 ▶육개장 9천 원 ▶해장국 9천 원 ▶떡만둣국 9천 원 ▶도가니무침(대) 4만 원 ▶수육(대) 4만 원. ☎032-772-7885

안재균 기자 a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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