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오글거려서 수저조차 들 수가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수저를 들었지만 밥이나 마음먹은 반찬을 기껏해야 한 척(尺) 남짓한 입에까지 무사히 배송하는 건 불가능했다. 평소 즐겨먹던 갖가지 거섶이 밥상에 올랐건만 그날 따라 유난히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에 연신 헛구역질만 해댔다.

나에게 처음 이런 증세가 나타난 건 수십 년 전 어느 날이다. 들었는지, 읽었는지는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어딘가에서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모래를 쌀로 둔갑시키는…’ 어쩌구저쩌구하는 개소릴 접하면서부터다. ‘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고성이 동부하시니…’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를 마주했을 때만 해도 딱히 거부감은 없었다. 수백 년 전의 일이어서 그러려니도 했거니와 오직 한자의 음과 뜻을 익혀 시험을 잘 봐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한데, 이후에도 간간이 같은 증상이 반복됐다.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희대의 살인마가 허구한 날 ‘땡전뉴스’로 대변되는 뉴스 첫 꼭지를 장식할 때도 그랬고, 대통령 자리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던 이를 주야장천 핥아대던 언론보도를 볼 때도 그랬다. 지난 2017년 1월 1일 ‘수첩공주’라는 별명의 소유자가,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이 두 손을 앞으로 포갠 채 이 세상에서 가장 공손하고 조신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림을 봤을 때는 더욱 심했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용인에도 이름하여 ‘우상화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인자(因子)들은 천지삐까리다. 당시에도 문제 제기를 했지만 민선 6기 정찬민 시장의 집무실 이전을 놓고 언론 매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용비어천가’를 불러 젖혔다. 이 자리에서 또다시 동어반복할 이유는 느끼지 못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미를 둘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민선 7기 백군기 시장 취임 이후에도 ‘용비어천가’ 대상만 바뀌었을 뿐 일부 언론의 행태는 달라진 게 없다. 침이 마르도록 정 시장 칭송하던 바로 그 입으로 백 시장을 치켜세우고, 정 시장 어르듯 두 팔을 이용해 백 시장 무동을 태운다. 가끔은 일등석에 자리를 마련하고 비행기를 태우는 서비스도 마다지 않는다. 인터넷 바다 곳곳에 정시장과의 ‘밀월관계’를 입증하는 간접증거들이 차고 넘쳐서 열없을 만도 한데 애시당초 수치심 유전자는 없었는지, 아니면 어느 순간 개나 줘버렸는지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랑은 움직인다’는 변심한 이의 자기합리화 논리와 ‘이긴 사람이 우리 편’이라는 언론계의 통설을 전가의 보도쯤으로 여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망둥이가 뛴다고 방안의 빗자루마저 함께 날뛴다는 점이다. 일부 공직자들 얘기다. ‘객관적인’ 일부 언론이 추앙하는 이를 시장으로 모신다는 자긍심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으나 히죽거리며 그저 좋아 죽겠단다. 마술사라서 좋고, 뚝심 있대서 좋고, 뼈대 있대서 좋댄다. 차라리 바늘을 뭉둥이라고 하는 건 애교 수준이다. 어지간히들 좀 하셔라. 그놈의 ‘쇤네근성’ 신물난다. 혹여 내 가슴 한편에 투기심(妬忌心)이 똬리를 틀고 있는 건 아닐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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