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성 국제PEN한국본부 인천지역부회장
신효성 국제PEN한국본부 인천지역부회장

재재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처럼 봄 햇살에 와그르르 피어나는 개나리는 혹한을 견디고 온 봄의 대표 꽃이다. 천진하고 명랑하고 밝고 희망적인 노란색으로 생기 가득한 색감이다. 세상 만물에 노란 빛의 봄 햇살이 비춰지면 사람도 자연도 움츠린 어깨를 펴고 생체에너지는 역동을 시작한다. 글로벌 색채연구소 팬톤(Pantone)에서 매년 올해의 색을 발표한다. 2021년을 대표하는 색으로 ‘일루미네이팅(Illuminating)’과 ‘얼티미트 그레이(Ultimate Gray)’를 선정했다. 

생소한 이름을 가진 색이지만 고난의 한 해를 지나온 올해에 더없이 적격인 색상이다. 새해에 매년 한 가지 색을 선정하는 팬톤에서 2021년에는 이례적으로 두 가지 색을 대표 색으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두 색상은 회복과 재창조 그리고 탄력성과 낙관주의, 희망, 긍정성을 뜻하는 조합입니다."

‘일루미네이팅’은 밝은 노란색으로, 즐거움과 생기가 넘치고 태양의 에너지가 스며든 따뜻한 희망을 상징하고 ‘얼티미트 그레이’는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는 요소를 상징하며 평온함과 안정감, 탄력성을 보여주는 색채라 올해의 색으로 두 색상의 조합은 적절한 선택이라 하겠다. 색은 사람의 감정과 정서에 영향력을 가진다. 우리의 오감에 스며들어 정서와 사상뿐 아니라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올해의 대표색이 주류를 이룰 2021년은 코로나 강펀치를 맞아 비틀거리는 지구촌에 회복과 재창조의 탄력성을 부여해 희망과 긍정으로 낙관적인 에너지를 줄 것이라 기대한다. 

작년 한 해는 고통과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무차별로 진격해 온 코로나19의 무게를 다 합쳐봐야 겨우 1㎏이 될까 말까라고 한다. 어이없게도 그 미물에게 끌려 다니느라고 아직도 빡센 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다. 팬톤에서 정하는 올해의 색은 그 해를 상징하는 색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팬톤에서 선정한 2020년 올해의 색은 ‘클래식 블루’였다. ‘클래식 블루’는 해질 무렵 하늘빛인 어두운 느낌이 드는 색상이다.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져 코로나 우울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가 2020년 올해의 색과 무관하지 않아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유발하는 색이 됐다. 

그러나 고통과 절망과 단절의 2020년은 지나갔다. 신년벽두지만 이미 바이러스를 퇴치할 백신 접종이 시작됐고 치료제 개발에도 희소식이 전해진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물건들에 생기 넘치는 노란 색이 입혀지고 안정과 회복의 부드러운 그레이 톤이 감싸고 있는 열두 달을 보내는 동안 유린당한 우리 몸과 마음은 치유가 돼 갈 것이다. 유치원 건물, 스쿨버스, 어린이용품은 대개 노란색이다. 밝고 희망적이고 명랑하다. 노랑병아리는 어린이를 상징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작고 연약하면서 귀엽고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운 웃음 가득한 얼굴이 현수막에 걸려 있다. "엄마 아빠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나는 모르겠어요." "정인아 미안해. 어른이 미안해. 늦었지만 우리가 바꿀게." 

16개월 짧디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의 죽음에 분노한 사람들이 내건 현수막이다. 정인이의 부검 결과가 북극한파보다 더 시리다. ‘후두골, 좌측 쇄골, 좌우측 늑골, 우측 척골, 좌측 견갑골, 우측 대퇴골 골절. 소장, 대장, 장간막 파열 등, 옆구리, 배, 다리 등 전신 피하 출혈. 세상 얼어붙게 한 양모의 잔인함이다. 우리의 가슴에 세밑 한파로 전해진 정인이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으로 우리 사회를 꽁꽁 얼려버렸다. 생명을 감싸주고 순수를 지켜줄 노랑과 회색의 색깔이 절대 필요한 이유다. 

두 색상의 조합은 더 밝아지고 더 건강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의류에 화장품에 인테리어에 식탁에 학용품에 장난감에, 어쩌면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심장에도 스며들어 변이 바이러스로 재무장한 코로나를 퇴각시킬 것이고 사람의 가슴마다 온유와 평강의 질서를 회복할 힘을 가져올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희망의 봄 전령사를 맞이할 준비로 노란색 실크 스카프와 온화한 그레이 색깔의 봄 구두 한 켤레를 장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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